-10년만의 리뉴얼, '쇼룸' 탈피하고 문화 공간으로
-브랜드 경계 허문 전시 구성 인상깊게 다가와
도산대로는 흔히 수입차 거리로 불린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등 유수의 브랜드 전시장은 물론 롤스로이스, 벤틀리, 페라리, 로터스 등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진귀한 차들도 이곳을 거점으로 삼고 있다.
그 한복판인 도산공원 사거리에 10년 전, 현대자동차는 현대모터스튜디오 서울을 열었다. 벤츠와 BMW 전시장이 나란히 마주보고 있는 이곳에 세운 쇼룸은 그 자체로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그 공간은 어디까지나 현대차를 보여주는 잘 만들어진 전시장에 지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 공간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는 '자동차에 대한 모든 취향을 담은 놀이터' 라는 콘셉트 아래 진정한 '모터스튜디오' 라는 콘셉트로 다시 방문객을 맞는다. 단순히 건물을 새단장한 게 아니다. 자동차 마니아와 일반 대중이 교류하며 문화를 만들어가는, 문자 그대로의 복합 문화 공간으로 발전해 있었다.
가장 먼저 들어선 1~2층부터 느낌이 사뭇 다르다. '오토라이브러리'라고 명명된 이곳은 일본 츠타야 서점을 운영하는 CCC와 협업해 마련한 곳이다. 자동차 전문 서점이자 전시관, 동시에 라이프스타일 공간이었다.
벽면을 가득 채운 2,500여 권의 책과 500여 점의 아이템은 단순히 늘어놓은 것이 아니라 주제별로 치밀하게 큐레이션 되어 있었다. BMW그룹 뮌헨 본사의 건축 철학을 다룬 전문 서적, 페라리의 레이싱 헤리티지를 기록한 사진집, 심지어 토요타 AE86 굿즈까지 전시되어 있었다. 애니메이션 ‘이니셜 D’의 주인공 차가 토요타였다는 점에서 일본 자동차 문화와 대중문화의 교차점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소품이었다.
한쪽에는 쿠바의 거리 문화를 상징하는 쉐보레, 캐딜락 올드카 모형과 사진들이 자리해 있었다. 정권 교체와 경제 제재로 새로운 차 수입이 막힌 쿠바에서 1950년대 미국차들이 여전히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하는 전시였다. 현대차의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브랜드의 울타리를 벗어나 ‘자동차 그 자체’의 역사를 보여주려는 의도가 명확히 읽혔다.
빈티지 컬렉션 존도 인상적이었다. 수집가들이 소장하던 오래된 미니카, 카탈로그, 엠블럼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전 세계적으로 5권 밖에 찍어내지 않은 책부터 언제 만들어졌는지 가늠할 수도 없는 영국의 자동차 여행 지도 책, 제법 색이 바랜 다소 예전 폰트의 미쉐린 캐릭터 '비벤덤'이 그려진 장식품까지.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자동차 역사 한 조각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모두가 열광할 만한 구성이다.
한켠의 다이캐트존도 눈길을 끌었다. 현대차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역할을 했던 자동차들이 가득하다. 지금은 도무지 구할래야 구할 수도 없을 것만 같은 그라나다, 각그랜저(1세대 그랜저), 다이너스티부터 최신 아이오닉5, 팰리세이드, 스타리아까지. 자동차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때 누군가의 장난감이었을 모형들과 최신 다이캐스팅이 한 자리에 있는 모습에 감격할 수 밖에 없다.
3층과 4층은 다시 현대차 브랜드의 정체성으로 돌아왔다. 3층에는 고성능 브랜드 N이 자리했다. 10주년을 맞은 N 브랜드의 성과와 비전을 보여주는 전시 공간은 레이싱 시뮬레이터부터 롤링랩 RN24까지 다채롭게 구성되어 있었다. 관람객들은 단순히 차를 보는 것을 넘어 가상 레이싱 체험을 통해 N의 DNA를 직접 체감할 수 있었다.
4층은 전기차 브랜드 아이오닉의 전시장이다. 전시된 차와 함께 마련된 ‘다이캐스트 월’은 특히 눈길을 끌었다. 108개의 미니어처 다이캐스트를 벽에 촘촘히 부착해 다양한 색상과 조합을 한눈에 보여줬다. 단순히 모델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차를 고르는 과정까지 경험하도록 설계한 기획이 돋보였다.
마지막으로 향한 5층은 이번 리뉴얼의 백미다. ‘HMS 클럽 라운지’는 현대차 멤버십 회원들을 위한 전용 공간이다. 신차 개발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전시와 함께 자동차 전문가를 초청한 토크 프로그램, 동호회 모임을 위한 코워킹 스페이스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자동차 문화의 아지트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았다.
현대 모터스튜디오 서울의 이번 변화는 일본 아이치현 나카쿠테의 토요타 자동차 박물관을 떠올리게 했다. 토요타가 운영하지만 이 박물관은 결코 토요타만의 무대가 아니다. 포르쉐 356, 포드 모델 T 등 세계 자동차 역사에 기념비적인 차들이 전시되어 있다. 토요타라는 브랜드를 넘어 자동차 문화를 기록하고 공유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폭스바겐의 아우토슈타트, 포르쉐 박물관,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도 마찬가지다. 각 브랜드의 뿌리를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자동차 산업 전체의 흐름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현모터모스튜디오 서울은 이제 그 반열에 올라섰다. BMW 서적과 페라리 헤리티지 전시, 토요타 굿즈, 쿠바 올드카 문화까지 포용하며 자동차라는 거대한 문화의 맥락 속에서 현대차의 정체성을 다시 규정한 것이다.
도산대로 한복판에 국산차 전시장이 들어섰다는 사실만으로도 감회가 새로웠던 10년 전과 달리 오늘날의 현대모터스튜디오 서울은 그 의미가 훨씬 더 넓어졌다. 단순히 현대차를 알리는 공간이 아니라 자동차라는 문화 자체를 아우르는 플랫폼이 된 것이다.
“자동차를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문화를 완성해 가는 공간입니다.” 현장 안내를 맡은 최병영 구루가 현대모터스튜디오의 새로운 모습을 정의한 표현이다. 이제는 특정 브랜드의 쇼룸을 넘어 세계 자동차 문화와 나란히 설 수 있는 공간. 자동차 기자로서 이 현장을 지켜보며 마침내 한국에도 이런 문화적 거점이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 무척 뿌듯하게 느껴졌다.
▲에필로그
현장에 마련된 케이터링에 의미가 있었다.준비된 다과는 바나나 크림이 들어간 슈와 인삼정과를 올린 개성주악. 포니가 처음 에콰도르에 수출될 당시 대금을 바나나로 대신 받았던 기록, 그리고 해외 주재원들이 한국을 알리겠다며 서류가방마다 인삼을 넣어 거래처에 선물로 건넸던 일화를 상징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었다.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한국 자동차 산업이 걸어온 여정을 은유한 장치였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