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 “팔리지 않아도 괜찮아”, 국산 왜건의 진짜 의미

입력 2025년10월24일 09시00분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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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산차 역사 속 항상 함께해 온 왜건
 -판매는 미약하지만 존재만으로 의미 높아
 -소비자 선택 폭 넓히는 브랜드 노력에 박수

 

 한국 자동차 시장에서 ‘왜건’이라는 단어는 낯설면서도 낯설지 않았다. 다소 엉뚱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명백한 사실이다. 국내 선호도가 낮은 세그먼트이기 때문에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꽤 오래전부터 국산 왜건이 명맥을 지켜오고 있어서다.

 



 

 시작은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포니 왜건을 국내 선보이며 사람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차를 알리게 된다. 이후 1990년대 후반에는 왜건의 대중화에 한 걸음 다가갔다. 현대차 아반떼 투어링을 비롯해 대우자동차 누비라 스패건 등이 도로 위를 달렸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왜건을 ‘가족차’로 보지 않았다. 독특한 형태의 짐을 싣기 위한 차로 보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럼에도 완성차 회사들은 꾸준히 왜건을 출시하며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이어 나갔다. 기아자동차 리오의 왜건형인 RX‑V, 한국지엠의 라세티 왜건, 현대차 i30 CW 등이 대표적이었다. 

 

 이후 2011년, 현대차가 i40 왜건을 출시하며 새로운 시도를 했다. 세련된 디자인과 넉넉한 공간, 유럽 감성까지 담았고 젊은 소비층을 겨냥하며 어필했다. 판매에 있어서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국산 왜건 분위기를 환기시켰다는 평을 남기며 주목을 끄는 데에는 소정의 목적을 달성했다. 물론 SUV 열풍 속에서 i40 왜건 역시 관심이 지속되지 못한 채 조용히 사라졌다.

 

 현대차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를 바탕으로 G70 슈팅브레이크를 통해 다시 시장에 도전했다. 2022년 7월 출시됐으며 세단의 날렵한 비율에 실용성을 더한 차체, 스포티하면서도 품격 있는 라인을 바탕으로 투어링이 아닌 슈팅브레이크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여전히 SUV의 벽은 높았다. 카이즈유 데이터 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G70 슈팅브레이크의 신규등록대수는 2022년 779대, 2023년 408대, 2024년 들어서는 179대 수준에 그쳤다. 올해도 9월까지 누적판매는 65대다.

 

 왜건의 인기가 시들한 이유로는 소비자 인식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가족용 프리미엄카 보다는 짐 공간 활용에 초점을 맞춘 차라는 생각이 강하다. 이와 함께 SUV나 세단과 가격이 비슷하거나 더 비쌀 수 있는데 외형적으로 특별히 커 보이지도 않고 실내공간 이점도 SUV보다 작게 느껴질 수 있다. 특히, SUV는 실용성과 디자인 모두에서 왜건의 영역을 흡수했다. 높은 시야, 더 큰 트렁크, 레저 이미지 등이다.

 



 

 하지만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왜건만큼 유용하고 좋은 차도 없다. 왜건은 기본적으로 세단 플랫폼을 그대로 유지한 채 뒷부분(트렁크)을 늘린 구조다. 따라서 SUV보다 무게중심이 낮고, 주행 안정성이 높다. 코너링이나 고속 주행 시 차체 롤(기울어짐)이 적고 차선 변경 시 반응도 훨씬 날렵하다. 동시에 트렁크 공간은 세단보다 훨씬 크고 SUV에 버금가는 적재공간을 확보한다.

 

 더욱이 왜건의 트렁크는 입구가 낮고 평평한 바닥으로 설계되어 짐을 싣고 내리기 훨씬 편하다. SUV는 적재 높이가 높아 허리를 굽히거나 들어올려야 하지만 왜건은 거의 밀어 넣는 느낌으로 간편하게 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낮은 탑승 높이로 인한 편안한 승하차를 제공한다는 것도 마음에 든다. 차체 진입 높이가 낮으니 주차장 높이 제한에도 덜 걸린다. 마지막으로 개성을 드러내는 감성적·디자인적 매력도 한 수 위다. 긴 루프라인과 매끄러운 실루엣이 주는 고급스럽고 스포티한 분위기가 있다. 희소성까지 챙겨 나만의 차를 원하는 소비자들이나 마니아층이 두텁다.

 

 무엇보다도 왜건은 팔리지 않아도 의미 있는 차다. 현대차와 제네시스가 왜건을 꾸준히 선보이는 것은 단순한 실험이 아닌, 시장 다양성을 위한 노력이다. 판매 실적보다 소비자 선택권을 넓히는 것을 우선시한 결정이라는 것이다. SUV로 가득한 국내 시장에서 이런 시도는 분명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자동차를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취향과 문화의 표현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확장시키기 때문이다.

 

 왜건은 한국 시장에서 여전히 비주류다. 하지만 누군가는 세단보다 실용적이고 SUV보다 낮은 주행감을 원한다. 그런 소수의 취향을 존중하는 브랜드가 있다는 건 자동차 문화가 성숙하고 있다는 증거다. 현재 판매중인 유일한 국산 왜건, 제네시스 G70 슈팅브레이크의 성적표는 초라할지 몰라도 그 존재만으로도 한국 자동차 시장은 조금 더 다양해지고 있다. 모든 차가 잘 팔릴 필요는 없다. 어떤 차는 존재하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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