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V, BEV, FCV 확대 핵심은 인프라
자동차 업계가 난리다. 정부가 2035년까지 수송 부문 배출가스 감축율을 높게 설정하자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낸다. 하지만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다만,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를 놓고 갑론을박이다. 그러면서 목표에 도달하려면 무공해차 대당 보조금을 늘리고 충전요금 할인이 지속돼야 하며 수도권 버스전용차로 운행 허용을 주장한다. 이용자 입장에서 EV 구매 요인을 확실히 만들어야 공급자도 생산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런 혜택 없이 오로지 자동차를 만드는 기업에게 EV 판매를 늘리라고 하면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여기서 눈여겨 볼 대목은 EV 보조금의 사용 방안이다. 현재 EV 보조금은 소비자 구매 단계에서 지급된다. 그렇다 보니 제조사마다 보조금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리고 보조금 지급 규정은 매우 복잡하다. 효율, 배터리 에너지 밀도, 충전 인프라, 첨단 기능 등 수많은 지급 항목이 반영된다. 덕분에 조금이라도 보조금을 받으려는 제조사 간 경쟁이 펼쳐졌고 소비자 안전 조치도 취해졌다. 동시에 다양한 EV가 시장에 등장해 보급이 이뤄진다.
하지만 보조금 제도가 간과한 것이 있다. 1회 충전 주행거리 등을 보조금 기준에 포함해 배터리 사용량이 늘어난 점이다. 한 마디로 EV 제조 비용 상승이다. 이렇게 오른 비용은 차 가격에 반영되고 EV 판매자는 더더욱 보조금에 목매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스스로 원가 절감에 집중하기보다 모든 제조사가 오로지 EV 구매 보조금만 바라보는 시장이 형성됐다. 보조금 제도가 바뀔 때마다 불만이 쏟아지는 배경이다. 또한 모두가 장거리용일 뿐 가격이 저렴한 중거리, 단거리용은 보조금이 적어 만들지 않는다. 내연기관도 연료탱크 용량이 다양한데 EV는 모두 대용량만 적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서 무공해차 구매 보조금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제품 보급은 제조사의 치열한 경쟁 영역으로 남겨두고 정부는 보조금 대부분을 충전 인프라 확충에 투입해야 한다. 이용자 편의성이 늘어나면 구매 보조금이 없어도 스스로 지갑을 여는 소비 문화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지원해야 할 부분은 운행 지원이다. 자동차 업계가 제안한 고속도로 통행료 50% 할인, 충전료 할인, 버스전용차로 운행 등이 해당한다. 충전이 어렵지 않고 운행 과정에 혜택이 있으면 보조금이 없어도 구매 가치는 충분히 오른다.
이외 중요한 것은 한 가지 더 있다. EV 운행에 따른 탄소 감축 혜택이다. 구매 보조금이 없는 EV 운행으로 탄소 감축을 실현하는 주체자는 EV 소유자다. 그런데 운행에 따른 탄소 감축 혜택은 전혀 없다. 여기서 감축된 배출권 혜택은 오로지 기업에게만 적용된다. 개인의 재산권 침해이자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다. 보조금 대신 EV 운행으로 만들어진 배출권을 개인이 외부에 판매토록 하면 그게 곧 보조금 역할이다. 이미 운송 기업 중심으로 활성화된 배출권 거래를 개인으로 확대해야 한다. 오히려 이때 거래되는 배출권에 보조금을 주는 게 EV 직접 구매 혜택보다 월등히 효과적이다. EV의 누적 보급대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실제 내연기관을 대체한 운행 거리가 곧 탄소 배출 감축인 탓이다.
그럼에도 기후에너지환경부 등이 주무 부처는 오로지 구매 보조금에 초점을 맞춘다. EV를 환경 정책적 시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밀히 EV는 소비자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어떻게 이용 편의성을 높여줄 수 있고, 어떻게 운행 이점을 만들어주며, 어떻게 이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감축의 재산 가치를 높여줄까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보조금으로 보급 주도권을 갖겠다는 것은 행정 당국의 욕심일 뿐이다. 정작 보조금 정책을 주도하는 기후에너지환경부에서 EV를 타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 궁금하다. 그들도 자동차 구매자이고 내연기관과 EV 사이에서 고민할테니 말이다. 보조금 지급한다고 정말 사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그들도 머쓱할 것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