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진 SUV 속 빛나는 '정통성'
-각종 오프로드 장비, '전자식'과는 궤 달리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든든함이 최고의 매력
모든 세그먼트에 SUV가 포진해 있지만 진짜 SUV라 부를 수 있는 차는 많지 않다. 효율을 이유로 사륜구동을 포기하고 지상고를 낮춰 왜건인지 해치백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SUV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지프 랭글러는 오직 한 방향만 바라본다. 험로 주행의 원조이자 SUV의 시초라는 자부심으로 말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랭글러 투스카데로 에디션’은 존재 자체로 강렬하다. 눈부신 핑크빛 차체는 도시의 거리에서도, 흙먼지 날리는 트레일 위에서도 단번에 시선을 휘어잡는다.
▲디자인&상품성
투스카데로는 단순한 색상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시절 영국군이 사막에서 위장 효과를 노리고 핑크색으로 차량을 도색한 데서 유래한 전통의 상징이다. 깊고 진한 크로마틱 마젠타 컬러는 강렬하면서도 의외로 자연 속에서도 잘 녹아드는 톤이다.
세븐 슬롯 그릴은 슬롯 자체는 더 커지고 전체 그릴 외곽은 더 슬림해져 랭글러 특유의 당당함과 현대적 인상을 동시에 만든다. 수직 슬롯 설계로 냉각 효율까지 개선해 기능과 형태를 함께 챙겼고 새로운 서라운딩 링 라이트가 적용된 LED 헤드램프와 전면 DRL이 시인성과 아이코닉한 이미지를 강화한다. 안테나는 강철 로드를 없애고 윈드실드 통합형 스텔스 타입으로 바뀌어 가지나 장애물 접촉 위험을 줄이면서 전면부를 더 단정하게 정리한다.
탈부착식 도어와 접이식 윈드실드가 만드는 레이어는 랭글러만의 경험을 극대화한다. 여기에 투스카데로 에디션 특유의 깊고 강렬한 크로마틱 마젠타 바디 컬러가 측면 실루엣의 평면과 엣지를 또렷하게 드러낸다
스페어타이어가 외부에 장착되는 전통적 레이아웃은 시각적 중심을 뒤로 옮겨 오프로더의 캐릭터를 강조한다. 라인업 구성상 리어 토우 후크가 적용돼 실사용 견인·구난 상황에 대비할 수 있고 루비콘 하드탑 기반의 투스카데로는 순정 액세서리로 도어 실 가드와 전좌석 그랩 핸들, 캐스트 알루미늄 주유구 커버를 기본 포함해 후면·측면에서 보이는 디테일까지 완성도를 높였다.
투스카데로 에디션은 루비콘 하드탑을 기반으로 순정 액세서리 3종을 기본 제공한다. 스테인리스 도어 실 가드, 전 좌석 그랩 핸들, 그리고 캐스트 알루미늄 주유구 커버를 포함한다.
실내는 여전히 투박하다. 하지만 단단한 금속 버튼과 볼트 노출 구조가 이 차의 본질을 대변한다. 12.3인치 터치스크린은 유커넥트5 시스템을 지원하며 무선 애플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가 기본이다. 인포테인먼트 내에는 오프로드 주행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메뉴가 따로 마련됐다.
투스카데로는 화려함보다 상징성을 택했다. 대신 가죽 시트와 레드 스티치, 루비콘 자수, 붉은색 안전벨트 등 기본 사양을 그대로 이어받아 스페셜 에디션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했다.
▲성능
파워트레인은 2.0ℓ 4기통 터보 엔진이다. 최고출력은 272마력 최대토크는 40.8㎏·m이며 여기에 8단 자동변속기를 결합했다.
터보 엔진 특유의 응답성이 뛰어나다. 스로틀을 살짝 밟아도 묵직한 토크로 차체를 초반부터 밀어붙인다. 3,000rpm 이하에서 최대토크가 나와 저속 험로를 오르거나 모래길에서 빠져나올 때도 끊김이 없다. 가솔린 특유의 정숙함과 부드러운 회전 질감 덕에 장거리 고속주행에서도 피로감이 덜하다.
락-트랙 HD 풀타임 4WD 시스템은 랭글러 라인업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험로 주행 성능을 보여준다. 프론트·리어 전자식 디퍼렌셜 잠금장치가 기본으로 탑재돼 좌우 바퀴의 회전수를 완전히 묶어, 미끄러운 바위나 흙길에서도 모든 바퀴가 동일한 접지력을 확보한다. 여기에 전자식 프론트 스웨이바 분리장치가 더해져 차체 롤을 억제하거나 험로에서는 서스펜션의 스트로크를 극대화한다. 일반 SUV의 오프로드 모드가 단순히 트랙션 컨트롤과 변속 로직만 바꾸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오프로드 플러스 모드에서는 주행 환경에 따라 스로틀 반응, 셀렉스피드 컨트롤, 트랙션 제어, 변속기 모드가 자동 조정된다. 4H 모드에서는 모래 위를 빠르게 주행할 수 있도록 반응을 민첩하게 바꾸고, 4L 모드에서는 저속 록 크롤링을 위한 세밀한 제어로 전환된다. 여기에 77:1의 크롤비가 더해져 바위와 경사로에서도 안정적인 탈출이 가능하다.
서스펜션은 퍼포먼스 튜닝이 적용된 코일 스프링 구조로 충격 흡수력이 탁월하다. 다나 M210 와이드 HD 튜브 프런트 액슬과 락 레일이 장착되어 차체 강성을 높였고 도어 탈거 후 주행 시에도 뒤틀림이 거의 없다
브레이크는 전륜과 후륜 모두 대형 디스크가 적용된다. 여기에 셀렉스피드 컨트롤 기능이 험로 주행 시 1~8㎞/h 사이의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준다. 운전자는 스로틀이나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도 방향 조향에만 집중할 수 있다
온로드에서는 정통 오프로더라는 본질이 그대로 드러난다. 285/70R17 오프로드 타이어가 노면의 요철을 충실히 전달해주며 직결감은 좋지만 잔진동이 많다. 장거리 주행 시에는 이 타이어가 피로를 유발할 수 있어, 온로드 주행이 많다면 사하라 트림이나 온로드 전용 타이어를 고려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스티어링은 의외로 정교하다. 전자식 스티어링 시스템이 오프로드 주행 시엔 묵직하게 고속 주행 시엔 가볍게 변하는 가변 어시스트 로직으로 세팅되어 있다.
연료 효율은 7.5㎞/ℓ(도심 7.1㎞/ℓ, 고속 8.1㎞/ℓ)로 결코 효율적이지 않다. 하지만 이 차의 목적은 연비가 아니라 ‘어디든 간다’는 신뢰감이다.
▲총평
랭글러 투스카데로 리미티드 에디션은 단순히 색다른 컬러를 입힌 차가 아니다. 정통 SUV의 상징이라는 뿌리를 잃지 않으면서도 대담한 색으로 자기 확신을 드러낸다. 단 21대 한정이라는 상징성은 수치 이상의 가치를 부여한다. SUV의 유행 속에서도 꿋꿋이 자기 길을 걷는 랭글러에게 투스카데로는 일종의 예포다. SUV가 점점 ‘부드러워지는’ 시대에 이 핑크빛 오프로더는 정통의 뿌리를 잊지 않고 있다.
지프 랭글러의 가격은 7,270~8,640만원. 시승차인 투스카데로 에디션은 8,190만원이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