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로 돌아온 'SUV의 왕'
-요란함 대신 품격으로 가득
SUV는 많지만, ‘왕’이라 불릴 수 있는 차는 단 하나다. 오프로더의 역사에서 왕관은 늘 벤츠 G클래스의 머리 위에 있었다. 도심형 SUV가 편의성과 연비를 이유로 사륜구동을 버리고 왜건처럼 낮은 지상고로 변해가는 동안에도 G는 단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강철로 짜인 사다리형 프레임, 각진 실루엣, 거칠고도 우아한 존재감. 시대가 바뀌어도 왕좌는 비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왕은 새로운 심장을 달고 다시 태어났다. 이름하여 G580 위드 EQ 테크놀로지. 전기차 시대에도 왕은 왕이다.
G580은 전기 SUV의 홍수 속에서도 과장된 첨단 대신 품격을 택했다. 요란한 디자인도 낯선 조형도 없다. 동력만 전기로 바뀌었을 뿐 그 외에는 변화 자체를 거부한 듯한 자세다. 1979년 첫 세대 이래 이어진 사다리형 프레임은 그대로, 각진 실루엣 역시 타협이 없다.
블랙 라디에이터 그릴과 살짝 높아진 보닛, 새로 설계된 A필러와 루프 립 스포일러는 공기역학 개선을 위한 실용적 변화일 뿐이다. 그러나 이 모든 디테일이 더해져도 G클래스의 위엄은 여전하다. 마치 하나의 강철 덩어리가 대지를 짓누르듯 서 있다.
사다리형 프레임 위로 직선이 도드라진 박스형 차체는 보는 이를 압도한다. 4,865㎜의 길이와 1,985㎜의 폭, 2,890㎜의 휠베이스가 만들어내는 비례감은 요새와 같다. 도어를 닫는 순간 들려오는 ‘쿵’ 하는 묵직한 금속음은 왕이 휘장을 닫는 의식처럼 장엄하다.
후면에는 상징의 변화가 있다. 오랫동안 G클래스를 대표하던 스페어타이어 대신 충전 케이블이 들어 있는 디자인 박스가 자리했다.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시대의 전환을 선언하는 문장이다. 내연기관의 연료통이 전기 시대의 에너지 캡슐로 대체됐다.
실내는 왕의 알현실처럼 고요하고 견고하다. 수평형 대시보드 위로 12.3인치 듀얼 디스플레이가 나란히 자리하고 나파가죽과 알루미늄, 카본 파이버가 어우러진 재질감은 묵직한 품격을 완성한다. 스티어링휠, 시트 스티치, 콘솔 트림에는 파란색 포인트가 들어가 전동화 모델만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부메스터 3D 서라운드 오디오와 돌비 애트모스 시스템은 전기의 정적 속에서도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G 로어라 불리는 인공 사운드는 가속 페달을 밟을 때마다 특유의 저음과 진동을 구현하며 왕의 포효를 잃지 않게 해준다.
G580은 네 개의 전기모터를 품은, 말 그대로 네 발 달린 제왕이다. 각 바퀴에 장착된 독립 모터는 각각 146.75마력을 내며 총 출력은 587마력, 최대토크는 118.7㎏·m에 달한다. 0-100㎞/h 가속 시간은 4.7초. 무게 3톤에 가까운 거대한 차체가 이런 기세로 치고 나간다는 사실이 믿기 어렵다. 그러나 그 가속은 폭력적이지 않다. 왕의 걸음처럼 무게감 있고, 우아하다.
온로드에서의 첫인상은 고요한 권위다. 도심 속 신호 대기에서 출발 페달을 살짝 밟는 순간 전류가 네 바퀴를 동시에 깨운다. 엔진의 포효 대신 매끈한 추진감이 등을 밀어주고 차체는 무게감 속에서도 단단히 노면을 움켜쥔다. 폭발적인 토크가 즉각적으로 전달되지만 벤츠 특유의 완급 조절이 더해져 모든 움직임은 점잖다. 도시 한복판을 흐르는 순간조차 왕이 행차하는 듯한 위엄이 느껴진다.
고속도로로 진입하면 그 품격은 더 깊어진다. 공기역학과 무관할 것 같은 직선형 차체임에도 풍절음은 놀랄 만큼 적다. 새로 설계된 A필러와 루프 스포일러, 이중접합 유리가 실내를 고요하게 만든다. 100㎞/h를 넘겨도 실내는 정숙하다. 단단한 차체가 요철을 흡수하며 궤도를 따라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G 로어는 이 구간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가속할수록 합성된 저주파 엔진음이 실내를 채우며 마치 V8 엔진의 숨결이 되살아난 듯한 착각을 준다. 120㎞ 부근에서도 차체는 요동하지 않는다. 사다리형 프레임 위에 배터리를 낮게 배치한 구조 덕분이다. 무게중심이 낮고 바닥은 무겁지만 코너링은 의외로 자연스럽다. 조향감은 묵직하면서도 정밀하다. 직진 안정성은 탱크와 같다.
도심 주행에서는 오히려 대형 세단의 품격이 느껴진다. 전기모터의 즉각적인 반응 덕분에 좁은 골목이나 교차로에서도 움직임이 민첩하다. 주차장 진입로의 경사로에서도 브레이크 페달을 떼면 부드럽게 오르며 크롤링 기능이 세밀하게 속도를 조절한다. 덩치는 거대하지만 움직임은 세련되고 조용하다. 거대한 왕이 정장을 차려입은 듯한 품격이다.
G580 위드 EQ 테크놀로지는 단순한 전기차 버전의 G클래스가 아니다. 그것은 왕가의 재건이다. 강철의 근육 대신 전기의 신경을 얻었지만 통치자의 기개는 그대로다. 오프로더로서의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 정숙함과 지능형 시스템을 더해 왕의 권위를 현대적으로 해석했다.
전기 SUV가 효율만을 말할 때 G580은 품격으로 답한다. 고요한 산길에서도, 도심의 한복판에서도, 이 차가 남기는 것은 소음이 아니라 존재감이다. 반세기 동안 변하지 않았던 이름이 전기라는 언어로 다시 살아났다.
G580은 자동차라는 개념의 경계를 넘어선 존재다. 그것은 권위의 상징이자 시간과 기술을 초월한 상징물이다. 왕은 결코 몰락하지 않았다. 새로운 심장으로, 더 조용하고 더 강력하게 돌아왔을 뿐이다. LONG LIVE THE KING.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