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V 정체성 충실히 살린 구성
-전기차 전용 UI의 강점 인상적
독일에 폭스바겐 ID.버즈가 있다면 한국에는 기아 PV5가 있다. 기아의 PBV(Purpose Built Vehicle) 전략을 현실화한 제품, 바로 PV5다. 2025년 상반기부터 판매가 시작되었고 이미 도심 곳곳에서 모습을 볼 수 있다. 내연기관을 단순히 전동화한 것이 아니라 전동화 전용으로 설계한 PV5는 과거 봉고나인이 쌓아온 실용성의 DNA를 계승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갖춘 ‘새로운 시작’이 될 차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승용과 화물 모두 가능하도록 설계된 PV5 패신저(이하 PV5)를 시승했다.
▲디자인&상품성
PV5는 현대차·기아의 PBV 전용 플랫폼인 E-GMP.S를 쓴 첫 양산 PBV다. 길이와 너비, 높이는 각각 4,695㎜, 1,895㎜, 1,905㎜이며 휠베이스는 2,995㎜다. 이 크기는 국내 도심 도로와 주차 환경을 충분히 고려한 실용적인 수치다. 겉보기에는 1박스 밴과 닮았지만 실제로는 ‘1.5박스’로 해석하는 게 적절하다. E-GMP(Electric-Global Modular Platform) 덕분에 내연기관이 사라지며 실내 공간 설계에 훨씬 자유도가 생겼다.
전면 디자인은 벨트라인에 얇고 긴 주간주행등이 배열돼 있다. 1열 유리창의 벨트라인을 낮춰 전면 시야를 확보한 점도 인상적이다. 헤드램프는 휠하우스 높이와 비슷한 하단부에 위치하며 충전 소켓은 램프 사이에 자리 잡았다. 깔끔하지만 단단한 느낌, 약간 ‘잔근육 있는’ 스타일을 보여준다.
옆은 낮은 벨트라인 덕분에 1열과 2열 탑승자 모두 넓은 측면 시야를 누릴 수 있다. 개방감도 뛰어나다. 시승차는 플러스 트림으로 2열 플러시 글라스를 적용해 공간 감각을 더했다. 하단부는 블랙 휠 아치 클래딩과 사이드 스커트로 마감해 실용성과 보호성을 함께 고려한 설계다.
후면은 밴 특유의 단순한 박스형 구조지만 LED 리어 콤비네이션 램프를 적용했다. 다만, 방향지시등과 후진등은 기본적으로 전구 타입이어서 세부 품목에서는 다소 절충이 느껴진다. 시승차에는 스마트 파워테일게이트가 있어 사용 편의성이 높았다. 이처럼 PV5는 ‘실용성과 밴의 강점, 세단 또는 SUV의 쾌적함’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한 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PV5의 진짜 매력은 실내 공간과 수납 설계에서 드러난다. 1열 바닥 아래 플로어 언더 트레이 수납공간이 있고 시트 측면 아래에도 수납 공간이 마련돼 있어 자주 쓰지 않는 물건을 숨겨두기에 적합하다. 도어 트림에도 3단 수납이 마련돼 있어 작은 물건은 물론 페트병 2개 정도까지 여유롭게 수납 가능하다. 도어 손잡이와 결합한 상단 수납, 중간 및 하단 수납까지 공간 활용성도 높다.
운전석은 2웨이 럼버 서포트가 적용된 전동 시트다. 다만 일반 팔걸이가 운전석에만 적용된 점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클러스터는 7.5인치 풀 컬러 TFT LCD로 전기차에 필요한 정보만 군더더기 없이 표시되어 공간 활용 측면에서 여유를 제공했다. 여기에 데시보드 상단 사물함과 클러스터 왼쪽의 기아 샵 전용 액세서리 홀더는 덤이다.
2열은 벤치 타입 3인승 시트이며 성인이 모두 탑승해도 크게 불편하지 않은 공간과 앞좌석과의 거리도 충분했다. 다만 센터 암레스트가 없어 2인 탑승 시에는 장거리에서 다소 아쉬울 수도 있다. 등받이 조절과 시트백 폴딩이 가능하고 플러스 트림이라면 열선 시트, 1열 시트백 포켓, C타입 USB 단자 등을 제공한다.
트렁크 공간, 즉 화물 공간은 실용적이다. 비록 패신저 버전이지만 좌석 뒤 공간을 활용하면 ‘카고 수준’의 넓이를 확보할 수 있어 내부 수납이나 짐 적재 등 활용도 면에서 유연하다. 기아의 애드기어 악세사리를 이용하면 러기지 테이블, 우산꽂이, 시트백 오거나이저 등 다양한 선택으로 ‘내 공간’을 구성할 수 있다. 즉, PV5는 ‘사람 태우기’와 ‘짐 싣기’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린 다재다능한 모빌리티다.
▲성능
파워트레인은 전륜 모터 기반 전륜구동이며 최고출력 120㎾, 최대토크 250Nm이다. 배터리 용량은 71.2㎾h 롱레인지 버전으로 정부 공인 복합 주행거리는 1회 충전으로 약 358㎞, 도심 404㎞, 고속도로 301㎞를 기록한다. 실 주행에서 4.9㎞/kWh 정도의 에너지 소비 효율을 기록했다. 정지 상태에서 급가속은 약간 굼뜨게 느껴지지만 속도가 붙고 나면 가속은 부드럽고 안정적이다. EV 특유의 부드럽고 조용한 주행감, 그리고 E-GMP 플랫폼 덕분인 저중심 설계와 함께 2,075㎏의 공차중량임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이고 편안한 승차감을 느낄 수 있었다.
서스펜션과 타이어의 조합도 균형이 좋았다. 타이어는 금호타이어의 크루젠 EV HP71이 기본이며 EV 전용으로 내구성과 정숙성, 승차감 모두에서 만족스러웠다. 회전 저항도 크게 느낄 수 없었고 타이어 소음도 쉽게 들을 수 없어서 최적의 세팅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전기차 전용 서스펜션과 전용 타이어 덕분에 동급 승합차에서는 보기 드문 ‘고급감 있는 승합차 승차감’이었다. 도심 주행과 야간 시동 환경에서도 LED 헤드램프는 밝고 시야 확보가 뛰어났고, 고성능 공기청정 시스템(미세먼지 센서, 오토 디포그, 애프터블로우 포함) 덕분에 쾌적한 실내 환경도 유지할 수 있다.
반면, 회생 제동은 기본 1단계였고 배터리 충전 상태에 따라 상위 단계 사용이 제한되는 경우가 있어 다소 아쉬웠다. 세팅에 따라 1단계 고정 또는 사용자 설정이 가능하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속도로에서도 노면 소음은 비교적 억제됐고 1열 이중접합 글라스로 실내 소음 저감이 잘 되어 있다. 4명이 탑승하고 짐을 싣거나, 가족 또는 여럿이 이동하는 경우 PV5는 실용성과 편의성을 적절히 섞은 매력적인 선택지가 된다.
▲총평
기아 PV5 패신저는 ‘전기차 전용’으로 태어난 실용 밴이면서도 승용차처럼 쾌적하고 유연한 이동 수단이다. 탑승자 편의성은 다소 절제된 부분도 있지만 이동과 짐 운반, 그리고 다목적 활용이라는 목적성에는 충실한 차다. 특히, 도심·근거리 위주이거나 가족용 또는 취미·아웃도어용으로 사람, 짐, 유연한 공간 구성이 필요한 사용자라면 충분히 매력적이다.
현재는 패신저와 카고만 판매 중이지만 앞으로 다양한 PBV 형태의 파생 제품이 나올 경우 PV5는 한국 시장에서 실용 EV 밴의 기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시승은 전기차 전용 PBV라는 새로운 카테고리에 대한 기대와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다. 이와 함께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궁금해지는 경험이었다.
한편, 시승차의 가격은 PV5 패신저 플러스 트림에 파워도어, 스마트 커넥트, 드라이브 와이즈, 모니터링이 추가돼 5,347만원(세제혜택 전)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