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 토요타의 노사대화,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입력 2026년03월18일 08시40분 박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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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1위는 위기 말하는데 우린 '갈등중'
 -같은 언어로 말하는 노사, 우리는?

 

 지난 3월 11일 일본 아이치현 토요타시 본사에서 열린 토요타 제3차 노사 협의는 단순한 임금 협상 자리가 아니었다. 토요타의 노사 대화가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중요한 뉴스거리겠냐 되물을 수 있지만 세계 1위 자동차기업이 자신들 스스로를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은 단연 눈길을 끌었다. 

 


 

 야마모토 마사히로 토요타 총무·인사본부장은 협의 자리에서 “토요타는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AI 활용만 보더라도 회사 안에서 실제 사용하는 비율이 고작 20%에 불과하다”며 “3년 뒤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엄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심지어 “앞으로 사무직의 상당 부분이 필요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세계 판매 1위 자동차 기업의 임원이 노사 협의 자리에서 이런 말을 꺼낸 것은 이례적이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지금 토요타의 위기 인식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었다. 문제를 감추지 않고 노사가 함께 생산성 저하와 기술 쇠퇴, 인재 육성 실패를 공동의 과제로 올려놓았다.

 

 토요타 경영진이 강조한 것은 기술 변화였다. 사토 코지 사장은 “지금 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앞으로 돈을 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일은 AI로 대체될 것”이라는 현실도 인정했다. 나카지마 히로키 부사장은 "지금의 성과는 우리의 공이 아닌 선배들이 만들어놓은 기반 덕분"이라며 "기존 방식을 버리는게 두렵지만 10년 뒤 무엇을 남길 것인지 고민해야한다"고 같은 맥락에서 말을 이었다.

 


 

 눈여겨볼 대목은 토요타가 AI와 자동화를 고용 파괴의 언어로만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다. AI가 많은 일을 대체할 것이라는 현실을 냉정하게 인정하면서도 바뀌어야 하고 익숙한 것에서 탈피하자고 제의한다. 생산성을 높이되 사람을 소모품으로 만들지 않는 방식으로 바꾸자는 선언으로 봐도 무장하겠다. 

 

 흥미로운건 토요타 노조도 여기에 화답했다는 점이다. 노조 위원장 키토 케이스케는 "한대라도 더 좋은 차를 소비자에게 내보내는 게 중요하다"며 “제도와 룰도 성역 없이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생산성 향상과 기술 변화에 대해 노사가 같은 언어로 이야기한 것이다.

 

 이 장면은 한국 자동차 산업과 비교할 때 여러 생각을 남긴다. 최근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는 출입 절차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노조 간부들의 사무실 점거와 기물 파손으로 이어졌다. 현장의 사정을 단순하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자동차 산업이 거대한 기술 변화를 맞고 있는 시점에 노사 갈등이 출입 절차 문제로 폭발했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더 큰 문제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둘러싼 논쟁이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이미 로봇을 차세대 제조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보고 있다. 테슬라는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를 공장 생산라인에 시험 투입하고 있으며 향후 대량 생산까지 계획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은 휴머노이드 기술이 가장 먼저 상용화될 수 있는 산업이다. 수만 개의 부품 공급망과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통합 능력, 그리고 즉시 실증 가능한 공장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상황은 다르다. 현대자동차그룹이 보스턴다이내믹스를 통해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개발하고 있음에도 국내 공장 도입은 노조 반발에 가로막혀 있다. 노조는 고용 충격을 우려하고 있다. 이 우려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자동화 기술은 언제나 노동시장의 변화를 동반해 왔다. 

 

 그러나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기술 도입 자체를 막는 것이 과연 일자리를 지키는 길인가. 만약 휴머노이드 로봇의 실증과 학습이 미국 공장에서 먼저 진행되고 미래 제조 기술의 축적 역시 해외에서 이루어진다면 경쟁력의 중심도 그곳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토요타 노사 협의가 현대차에 던지는 교훈은 분명하다. 토요타가 특별히 이상적인 회사여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토요타는 스스로의 약점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했다. “토요타는 안태하지 않다”는 말, “AI 활용률이 20%에 불과하다”는 자성, “지금의 성과는 선배들이 뿌린 씨앗을 거두는 것일 뿐”이라는 반성은 모두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지금 방식 그대로는 미래를 버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토요타 노사는 기술 변화와 생산성 문제를 노사 갈등의 소재가 아니라 공동 과제로 올려놓았다.

 


 

 노사관계의 목표는 변화 저지가 아니라 변화의 설계여야 한다. AI든 휴머노이드든, 중요한 것은 도입 여부 자체가 아니다. 어떤 공정에, 어떤 속도로, 어떤 안전 기준으로, 어떤 재교육 프로그램과 함께 넣을 것인지가 진짜 의제다. 기술을 막는 노조는 결국 산업의 축소를 막지 못한다. 반대로 기술 도입만 외치며 고용 불안을 방치하는 경영도 신뢰를 얻지 못한다. 필요한 것은 ‘도입 반대’와 ‘일방 강행’ 사이의 제3의 해법이다. 생산성 향상으로 생긴 여력을 어떻게 노동시간, 직무 전환, 숙련 고도화, 신규 일자리로 연결할 것인지까지 포함한 새 합의다.

 

 토요타는 이번 협의에서 “회사도 아직 얼룩무늬이고, 조합도 아직 얼룩무늬”라고 솔직히 인정했다. 아직 여러 의견이 있고 입장이 일치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깔끔하게 인정했다. 하지만 적어도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는 확인했다. 더 많이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나은 차를 계속 만들 수 있는 회사를 지키기 위해 생산성과 기술, 사람의 역량을 함께 끌어올려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현대차에 필요한건 훨씬 더 냉정한 태도다. 현실을 직시하는 태도, 성역 없이 제도를 바꾸겠다는 각오, 그리고 기술 변화를 막는 것이 아니라 그 변화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고민하는 태도다. 지금의 자동차 산업은 단순히 차를 많이 파는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 공장 경쟁, 생산성 경쟁, 기술 경쟁을 동시에 치르고 있다. 이 싸움에서 뒤처지면 임금도 고용도 기업도 오래 버티기 어렵다. 토요타는 이미 그 현실을 알고 있었다. 이제 같은 질문을 국내 시각으로 돌려 던져야 할 때다. 거대한 산업의 변화 그리고 기술의 파도는 그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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