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 테세우스의 배,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입력 2026년08월21일 18시00분 박홍준
트위터로 보내기카카오톡 네이버 밴드 공유


 -구성 요소 50% 이상 바꾼 대대적 부분변경
 -화려해진 안팎에도 S클래스 본질은 그대로
 -화려함보다 인상적인 주행의 여유

 

 그리스 신화 속 영웅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치고 크레타섬에서 아테네로 돌아왔다. 아테네 사람들은 이 때 테세우스가 타고온 배를 오랫동안 보존했고 배를 감싼 널빤지가 낡을 때 마다 한 조각 한 조각씩을 새로운 것으로 교체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모든 널빤지가 새것으로 바뀌었다면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그것은 여전히 테세우스가 탔던 배라고 할 수 있을까. 

 


 

 철학에서는 실제로 이 명제를 묻는 질문에 '테세우스의 배' 라는 이름을 붙였다. 무엇이 그것을 그 존재답게 만드는지에 관한 고찰. 부분변경을 거친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를 마주하며 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벤츠는 이번 신차를 개발하며 구성 요소의 50% 이상을 재설계하거나 개선했다. 부분변경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큰 변화다. 그렇다면 절반 이상을 바꾼 S클래스는 여전히 S클래스일까.

 

 ▲디자인&상품성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신형 S클래스의 디자인은 이 질문에 꽤 흥미로운 답을 내놓는다. 세부적인 표현은 과감하게 바꿨지만 S클래스를 상징해온 기본적인 문법에는 좀처럼 손대지 않았다.

 

 변화는 얼굴에서 가장 선명하다. 역사상 처음으로 일루미네이티드 그릴을 적용했고 디지털 라이트에는 트윈 스타 그래픽을 넣었다. 테일램프에도 삼각별을 형상화한 그래픽을 새겼다. 그동안 브랜드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됐던 차가 이제는 앞뒤에서 자신이 벤츠임을 적극적으로 말한다.

 




 

 호불호가 갈릴 만한 대목이다. 절제된 우아함을 미덕으로 여겼던 기존 S클래스와 비교하면 다소 노골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것을 단순한 과시로만 보기는 어렵다. 자동차의 존재감을 만드는 방법 자체가 달라지고 있어서다. 거대한 그릴과 크롬 장식으로 권위를 표현하던 시대를 지나 이제 빛과 그래픽도 하나의 디자인 요소가 됐다. S클래스 역시 자신이 지켜온 격식을 버리기보다 이를 표현하는 방법을 시대에 맞춰 바꾼 셈이다.

 

 반대로 차체의 근간은 익숙하다. 길이 5,305㎜, 너비 1,920㎜, 높이 1,505㎜에 휠베이스는 3,216㎜다. 긴 보닛과 넉넉한 휠베이스, 뒤로 물러난 캐빈이 만들어내는 비례는 여전히 전통적인 대형 세단의 문법을 따른다. 유행에 따라 SUV처럼 높아지지도, 전기차처럼 캡포워드 형태를 좇지도 않았다. 널빤지는 상당수 교체했지만 배의 형태까지 바꾸지는 않은 셈이다.

 

 실내에서는 반대다. 형태보다 경험을 바꾸는 데 집중했다. 대시보드에는 여러 화면을 하나의 유리 표면 아래 연결한 MBUX 슈퍼스크린이 자리한다. 디지털 계기판까지 더하면 운전자를 둘러싼 상당 부분이 디스플레이다. 음악에 따라 빛이 움직이는 액티브 앰비언트 라이트까지 더해지면서 과거 나무와 가죽, 금속으로 표현했던 고급감을 이제는 빛과 화면으로도 표현한다.

 


 

 자칫 고급 세단이 거대한 전자제품처럼 느껴질 수 있는 변화다. 다행히 S클래스는 화면을 늘리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 안에 무엇을 담았느냐다.

 

 새로운 MB.OS를 기반으로 한 MBUX에는 챗GPT와 검색 기술을 활용하는 음성 비서가 들어갔다. 국내에서는 티맵 오토를 이용할 수 있고 지니뮤직과 밀리의서재, 라이브TV+ 등 국내 서비스도 지원한다. 화려한 기술을 보여주는 것보다 차 안에서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줄이는 방향이다.

 

 롱휠베이스의 뒷좌석도 같은 맥락이다. 전동식 뒷좌석과 열선·통풍 기능을 갖추고 두 개의 디스플레이와 별도 리모컨으로 구성한 MBUX 하이엔드 뒷좌석 엔터테인먼트 시스템도 적용했다. 다만 등받이를 최대 43.5도까지 눕힐 수 있는 이그제큐티브 시트와 쇼퍼 패키지는 S500 이상에서 기본 제공된다.

 




 

 S클래스가 택한 방법은 모든 것을 그대로 보존하는 게 아니었다. 별을 더하고 화면을 늘리고 인공지능까지 받아들였다. 시대가 요구하는 표현과 기술은 적극적으로 바꿨다. 대신 긴 보닛과 넉넉한 뒷좌석,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덜어준다는 목적은 남겨뒀다. 

 

 무엇을 지킨다는 건 어쩌면 예전 모습을 그대로 복제하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시대에 맞춰 모습을 바꾸면서도 그 안에 담긴 이유만큼은 잃지 않는 것. 신형 S클래스가 보여주는 변화도 여기에 가깝다.

 


 

 ▲성능
 시승차는 AMG 라인이 적용된 S450 4매틱 롱바디. 보닛 아래에는 3,0ℓ 직렬 6기통 가솔린 엔진이 자리한다.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결합해 최고 381마력, 최대 57.1㎏·m를 낸다. 변속기는 9단 자동이며 네 바퀴에 힘을 전달한다. 정지 상태에서 100㎞/h까지 걸리는 시간은 4.9초. 복합효율은 ℓ당 9.6㎞다.

 

 4.9초라는 숫자만 보면 빠른 차다. 그런데 운전석에서 느끼는 인상은 조금 다르다. S클래스는 속도를 과시하지 않는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5m가 넘는 거대한 차체를 어렵지 않게 밀어내지만 과정은 시종일관 차분하다. 운전자가 힘을 의식하기보다 원하는 속도에 어느새 도달해 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직렬 6기통과 48V 시스템의 조합도 이런 성격을 거든다. 엔진 회전수를 급격하게 끌어올리기보다는 낮은 영역부터 힘을 부드럽게 이어 붙인다. 9단 자동변속기도 자신의 존재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가속과 감속을 반복해도 동력계가 일하는 과정이 운전자에게 전달되는 순간을 최대한 줄인다.

 


 

 S클래스다운 면모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건 단연 승차감이다. 시승차에는 에어매틱 에어 서스펜션이 적용된다. S580에 들어가는 E-액티브 바디 컨트롤 만큼은 아니지만 S클래스가 노면을 다루는 방식은 충분히 인상적이다. 

 

 단순히 물렁한 승차감은 절대 아니다. 작은 충격은 둥글게 깎아내고 큰 굴곡을 지나면 차체 움직임을 빠르게 정리한다. 탑승자를 노면에서 무조건 격리하기보다 차가 먼저 충격을 받아내고 필요한 정보만 남기는 느낌이다. 차체가 상하로 크게 움직이는 상황에서도 불필요한 여진을 길게 끌지 않는다. 분명 S450을 타고 있는데, E-액티브 바디 컨트롤이 쓰인 S580 못지 않다.

 

 굽이진 길에서는 또 다른 면모가 나타난다. 길이 5.3m가 넘는 차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움직임이 제법 자연스럽다. 여기에는 기본 적용한 4.5도 리어 액슬 스티어링의 역할이 크다. 저속에서는 뒷바퀴를 앞바퀴와 반대 방향으로 틀어 회전 반경을 줄이고 속도가 올라가면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 안정성을 높인다.

 


 

 그렇다고 스포츠 세단처럼 운전자를 자극하지는 않는다. 스티어링 휠을 돌렸을 때 차가 날카롭게 방향을 바꾸기보다 운전자가 의도한 궤적을 부드럽게 따라간다. 속도를 높여도 차체를 억지로 노면에 붙잡아두는 느낌보다 자세를 자연스럽게 유지하는 쪽에 가깝다.

 

 정숙성도 같은 맥락이다. 엔진과 노면, 바람이 만들어내는 소리를 무작정 지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각종 소음이 어느 하나 튀어나오지 않도록 균형 있게 억제한다. 운전하다 보면 어느 순간 속도계를 다시 확인하게 되는 이유다.

 

 최신 운전자 보조 시스템도 한 몫한다. MB.드라이브 어시스트는 10개의 카메라와 5개의 레이더, 12개의 초음파 센서 등 총 27개의 센서를 활용한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조향, 차선 변경 등을 지원하고 주차와 저속 기동을 위한 기능도 강화했다.

 


 

 여기에서도 S클래스의 방향은 명확하다.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기술의 작동을 계속 알리기보다 운전자가 해야 할 일을 하나씩 덜어준다. 좋은 승차감이나 부드러운 변속처럼 잘 작동하고 있을 때 오히려 존재를 잊게 되는 기술이다.

 

 ▲총평
 테세우스의 배로 돌아가 보자. 배를 구성하던 나무를 모두 교체하고도 그것을 같은 배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 이유는 나무 자체가 정체성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S클래스도 마찬가지다. 이번 부분변경을 통해 절반 이상의 구성 요소를 손봤다. 불이 들어오는 그릴이 생겼고 삼각별은 더 많아졌다. 대시보드는 화면으로 채워졌고 인공지능과 새로운 운영체제까지 들어왔다. 어떤 변화는 반갑고 어떤 변화는 다소 과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운전대를 잡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가속은 빠르지만 서두르지 않고 변속은 이루어지지만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노면이 거칠어도 탑승자에게 전달되는 충격은 한 번 걸러진다. 거대한 차체를 움직이는 과정에서 운전자가 부담해야 할 몫도 최대한 줄였다.

 


 

 결국 S클래스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특정한 디자인도, 엔진도, 기술도 아니었다. 사람을 편안하게 이동시키고 운전에 필요한 수고를 덜어주는 것. 시대마다 방법은 달라졌지만 목적은 같았다. 어쩌면 정체성이란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데서 생기는 게 아닐지 모른다. 오히려 끊임없이 바꾸면서도 무엇만큼은 끝까지 지켜야 하는지 아는 데서 만들어진다. 2,700개의 요소를 바꾼 S클래스가 여전히 S클래스인 이유다.

 

 시승한 S450 4매틱 롱 AMG라인의 가격은 1억9,540만원.

 

 영월=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