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전력망의 짐일까 자산일까

입력 2026년08월28일 09시00분 박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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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력 수요 급증 전망에 '피크 타임' 고심 커져
 -잠재용량 252GWh..실제 활용은 제한적
 -'움직이는 발전소' 되려면 통제·보상 명확해야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생산시설을 중심으로 국내 전력수요가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면서 전기차의 역할에도 관심이 쏠린다. 전력을 소비하는 새로운 수요처인 동시에 배터리에 저장한 전기를 전력망에 되돌려주는 ‘움직이는 에너지저장장치’로 활용할 잠재력을 갖고 있어서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산업을 비롯한 신규 전력수요를 반영한 수급 전망을 마련하고 있다. 2040년 최대전력 목표수요는 158.4~165.0GW로 제시됐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전망한 2038년 최대전력(129.3GW)보다 크게 늘어난 수치다.

 

 정부는 늘어나는 수요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구상이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설비를 100GW로 확대하고 2035년 발전량 비중을 30% 이상으로 높이는 게 목표다. 다만 태양광과 풍력은 날씨와 시간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는 만큼 수요가 가장 많은 시간대에 어느 정도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그렇다면 나날이 늘어나는 전기차가 전력망에 부담이 되지는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연간 전력소비량 자체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충전이 특정 시간과 장소에 집중될 경우 이야기가 달라진다.

 


 

 정부는 2030년까지 전기차 420만대를 보급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모든 전기차가 현대차 아이오닉5(롱레인지 2WD 19인치, 복합 5.2㎞/㎾h)라고 상정하고, 전기차의 하루 평균 주행거리(62.9㎞, 한국교통안전공단 집계 기준)를 적용하면 전기차 한 대가 1년에 소비하는 전력은 약 4,415㎾h다.  420만대가 모두 같은 조건으로 운행한다고 가정하면 연간 전력소비량은 약 18.5TWh다. 2024년 국내 전력소비량(557.1TWh)의 3.3%로 그리 큰 부담은 아니다.

 

 문제는 소비량보다 충전이 이뤄지는 시간이다. 420만대가 1년 동안 사용하는 전력을 고르게 나누면 평균 부하는 약 2.1GW다. 그러나 퇴근 이후 공동주택에 전기차가 몰리고 버스와 화물차가 운행을 마친 뒤 한꺼번에 충전을 시작하면 특정 시간대의 부하는 급격히 커진다.

 

 지역별 차이도 무시하기 어렵다. 국가 전체 발전설비에 여유가 있더라도 특정 아파트나 물류단지의 변압기와 배전 용량이 부족하면 충전 출력을 제한해야 한다. 전기차가 많아질수록 발전소를 얼마나 더 지을 것인가 못지않게 언제, 어디에서 충전하게 할 것인지가 중요해지는 이유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해법은 충전 시간의 분산이다. 전력 수요가 많은 시간에는 충전 출력을 낮추거나 멈추고, 수요가 적거나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많은 시간에 충전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전기차가 전력망으로 전기를 내보내지 않더라도 충전 시점만 조절하면 최대부하를 낮추는 수요관리 자원이 될 수 있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간 기술이 V2G다. 전력망과 전기차가 전기를 양방향으로 주고받는 기술로 전력 수요가 적은 시간대에 배터리를 충전하고 수요가 몰릴 때 저장된 전력을 다시 공급한다. 태양광 발전량이 많은 낮에 전기를 저장했다가 발전량이 줄고 소비가 늘어나는 저녁에 내보내는 구조다.

 

 전기차 420만대에 평균 60㎾h 용량의 배터리가 탑재된다고 가정하면 총 저장용량은 252GWh에 이른다. 모두 아이오닉 5의 84㎾h 배터리를 장착했다고 보면 잠재용량은 352.8GWh까지 커진다. 산술적으로는 대규모 ESS 여러 곳을 합친 것과 맞먹는 규모다.

 

 그러나 배터리 총용량이 곧 전력망에 공급할 수 있는 전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차가 충전기에 연결돼 있어야 하고 양방향 충전을 지원하는 차와 충전기도 필요하다. 다음 운행에 필요한 전력을 제외하고 차주가 사용을 허용한 범위 안에서만 방전할 수 있다.

 

 실제 피크 대응 능력은 배터리 용량보다 참여 대수와 충전기 출력에 좌우된다. 예컨대 420만대의 10%인 42만대가 전력 수요가 많은 시간에 양방향 충전기에 연결돼 각각 7㎾를 공급한다고 가정하면 순간 공급능력은 약 2.94GW다. 참여율이 20%로 올라가면 5.88GW로 커진다. 

 

 문제는 어떻게 참여시키느냗. 참여를 요구하려면 명확한 보상도 뒤따라야 한다. 전기차 소유자는 피크 시간대에 전기를 판매해 수익을 얻을 수 있지만 배터리 열화와 필요할 때 충분한 주행거리를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을 떠안아야 한다. 전력 판매 수익이 배터리의 가치 하락과 불편을 보상하지 못하면 참여를 기대하기 어렵다.

 

 완성차 회사의 역할도 중요하다. 반복적인 충·방전이 배터리 수명에 미치는 영향을 검증하고 V2G 사용에 따른 보증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전력 사업자는 수많은 전기차의 연결 상태와 배터리 잔량, 운행 일정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하나의 발전자원처럼 제어해야 한다. 전기차에서 나온 전기를 누가 모아 판매하고 수익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관한 시장 규칙도 필요하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은 24시간 안정적인 전력을 요구한다. 반면 전기차는 충전 시점을 옮기고 저장된 전력을 되돌려줄 수 있다. 통제되지 않은 충전은 전력망의 새로운 부담이지만 제대로 연결된 전기차는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보완하고 피크 수요를 낮추는 자산이 된다. 전기차가 전력망의 짐이 될지, 움직이는 발전소가 될지는 보급 대수가 아니라 이를 연결하고 운용할 제도에 달렸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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