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오른 그랜저·아반떼 판매. 여전히 탄탄
-기아는 정 반대 양상, RV가 판매 실적 주도해
-신차 대기 끝난 뒤 현대차 RV 향방에 관심
자동차 판매 실적을 보면 어떤 브랜드가 몇 대를 팔았는지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소비자가 어떤 차를 찾고 있는지, 제품의 주기가 어떤지에 대한 '흐름'이다.
지난 9월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판매 실적이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같은 그룹에 속해 있고 기술적으로 상당히 많은 부분을 공유하지만 국내 시장에서 판매를 이끈 제품군은 확연히 달랐다.
현대차는 세단이었다. 지난 달 현대차의 국내 판매는 4만9,022대로 전년 동월 대비 25.7% 감소했다. 그럼에도 그랜저는 8,898대, 아반떼는 7,305대가 팔렸다. 쏘나타도 4,153대를 기록하면서 세단 판매량은 총 2만901대에 달했다. RV 판매량 1만3,710대보다 7,191대 많았다. SUV가 주류를 이루는 신차 시장에서 오히려 세단이 내수 판매의 중심을 잡은 것.
더욱 눈길을 끄는 건 그랜저와 아반떼다. 두 차는 최근 신차 가격 상승을 이야기할 때 자주 거론됐던 차종이다. 특히 선택품목을 더하면 과거보다 훨씬 높은 가격대에 진입하면서 수입차와의 가격 차이가 좁아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재밌는건 9월 판매만 놓고 보면 가격 상승이 곧바로 수요 감소로 이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그랜저와 아반떼 두 차종만 1만6,203대가 팔렸다. 현대차 국내 판매의 약 3분의 1이다. 소비자가 가격에 둔감해졌다는 의미도 아닐 테다.
반면 RV는 조금 다른 양상이다. 싼타페는 지난달 3,217대, 팰리세이드는 2,965대, 코나는 1,872대가 팔렸다. 현대차 RV 전체 판매량은 1만3,710대였다. 여기에는 제품 주기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신차 출시가 가까워지면 현행 차 구매를 미루는 대기 수요가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아의 흐름은 사뭇 다르다. 기아는 9월 국내에서 4만5,705대를 판매했는데 이 가운데 RV가 2만9,403대였다. 쏘렌토가 6,957대로 가장 많이 팔렸고 스포티지 5,497대, 셀토스 5,422대, 카니발 5,286대가 뒤를 이었다. 현대차에서는 그랜저와 아반떼가 중심을 잡았고 기아에서는 쏘렌토와 스포티지, 셀토스, 카니발이 판매를 이끈 셈이다.
특히 싼타페와 쏘렌토의 차이가 눈에 들어온다. 두 차는 같은 그룹의 플랫폼과 기술을 상당 부분 공유하는 중형 SUV다. 무엇보다 싼타페가 쏘렌토보다 더 새차다. 그런데 9월 판매량은 각각 3,217대와 6,957대다. 쏘렌토가 싼타페보다 두 배 이상 많이 팔렸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현대차 RV가 정말 약해진 걸까. 아니면 지금 차를 사려던 사람들이 잠시 지갑을 닫고 있는 걸까.
후자라면 설명은 어렵지 않다. 투싼은 완전변경을 앞두고 있다. 싼타페 역시 상품성 개선을 앞둔 만큼 현행 차를 지금 구입하기보다 새 차를 기다리려는 수요가 생길 수 있다. 실제 현대차도 9월 판매 감소 원인 가운데 하나로 '신차 대기 수요'를 꼽았다. 향후 판매 확대를 위한 신차로 신형 투싼을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자동차 시장에서 이런 현상은 낯설지 않다. 완전변경이나 부분변경 시점이 가까워지면 기존 차의 판매가 일시적으로 움츠러든다. 신차가 등장하면 그동안 기다렸던 수요가 한꺼번에 움직이면서 판매량이 다시 뛰기도 한다.
그렇다면 현대차로서는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닐 수 있다. 문제는 신차 대기만으로 설명되지 않을 경우다. 기아는 이미 국내 RV 시장에서 강력한 라인업을 구축했다. 쏘렌토를 중심으로 스포티지와 셀토스, 카니발이 각각 다른 영역에서 판매를 받치고 있다. 9월에는 기아 국내 판매 4만5,705대 가운데 RV가 2만9,403대였다. 10대 가운데 6대 이상이 RV였다는 의미다.
9월의 숫자가 던진 질문은 꽤 흥미롭다. 비싸졌다는 아반떼와 그랜저는 잘 팔렸다. SUV 전성시대인데 현대차에서는 세단이 RV보다 많이 팔렸다. 같은 기간 기아에서는 쏘렌토와 스포티지, 셀토스와 카니발이 판매를 이끌었다.
결국 확인해야 할 것은 가격표가 아니라 다음이다. 신형 투싼과 싼타페 부분변경이 나온 뒤에도 지금과 같은 모습이 이어질까. 그때가 되면 9월의 부진이 단순히 신차를 기다리던 소비자들의 '잠깐의 멈춤'이었는지, 아니면 현대차 RV의 경쟁력에 변화가 시작됐다는 신호였는지가 조금 더 분명해질 테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