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손잡고 협상력 높여야
‘130:5’. 지난해 한국과 미국이 서로 수출한 완성차 규모다. 한국은 미국에 130만5,991대를 수출했고 미국은 한국에 5만7,499대의 완성차를 내보냈다(한국무역통계진흥원,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통계월보). 한국의 미국 자동차 수출 규모는 2017년 61만대와 비교해 두 배 이상 성장한 반면 미국산 완성차의 한국 수입은 그때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다.
우려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논리다. 지난 2018년 한미 자동차 FTA가 개정된 이유는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차의 미국 수출을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국에 불과 5만대를 수출하는데 한국이 60만대를 미국에 보내는 것 자체가 불공정하다고 주장했고, 미국은 FTA 개정을 요구했다. 그 결과 픽업의 ‘국내 생산-미국 진출’이 가로막혔고, 연간 5만대까지 한국에 수입되는 미국산 완성차는 한국의 안전 기준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그럼에도 미국산 자동차의 한국 판매가 늘어난 것은 아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국내 시장 규모는 변동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산 완성차가 국내에 추가로 늘어나기도 어렵다. 수입 승용 시장 또한 연간 20만대 수준으로 일정한 탓이다. 미국산이 수입차 시장을 석권해도 20만대가 고작(?)이다. 설령 5만대에서 20만대로 늘어도 ‘130:20’의 논리를 힘으로 밀어붙이면 결국 한국 생산은 줄이고 미국 생산을 늘려야 한다.
문제는 일자리다. 130만대가 전량 미국으로 옮겨 가면 한국 내 완성차 공장 2~3곳은 문을 닫아야 한다. 아니면 100만대의 수출이 가능한 새로운 시장을 발굴해야 하는데 시장 규모가 큰 나라는 나라는 대부분 자신들의 자동차산업 보호를 위해 문을 걸어 잠그는 추세다. 과거의 전례에 비춰볼 때 트럼프 정부는 또 다시 ‘130:5’라는 논리를 앞세워 무역불균형 논리를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비단 이런 고민은 한국만 하는 게 아니다. 일본 또한 미국 수출이 많기 때문이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에서 만들어 미국으로 건너간 완성차는 150만대에 이른다. 일본에게도 완성차의 미국 수출은 매우 중요한 무역 품목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완성차의 미국 수출 관련해선 오히려 한국과 일본이 손을 맞잡고 미국에 공동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자동차 무역 불균형을 앞세워 미국 내 생산을 독려하면 할수록 한국과 일본 내 자동차공장의 입지는 좁아지고 그만큼 일자리도 사라질 수 있어서다.
일부에선 트럼프 정부가 미국의 전기차 전환 속도를 늦출 수 있음을 우려하며 전기차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전기차 전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어디서 완성차를 만드느냐는 문제다. 공장 내 생산 차종은 시장 흐름에 따라 유연화 할 수 있어서다.
현대차가 미국 내 전기차 전용 공장에 하이브리드 생산 라인을 추가한 것도 유연성의 일환이다. 그런데 미국이 한국 내 현대차와 기아, GM 한국사업장, 르노코리아에서 만들어 미국에 들어가는 완성차 수출을 막으면 국내 자동차 산업 기반은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 물론 일본도 타격은 크다. 일본이 한국보다 자동차 부문의 미국 수출 의존도가 조금 낮지만 그래도 비중 면에선 150만대를 대체할 새로운 시장이 없는 게 고민이다.
흔히 ‘먹고 사는 문제’와 ‘죽고 사는 문제’를 두고 갈등이 벌어진다. 경제와 산업은 ‘먹고 사는 문제’이고 국방 분야는 ‘죽고 사는 문제’로 여기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먹지 못하면 죽는다’는 명제도 논리적으로는 통용된다. 따라서 같은 문제를 떠안은 한국과 일본이 함께 협상력을 높여야 할 필요가 있다. 최근 현대차그룹과 토요타그룹의 최고 경영자가 손을 맞잡은 이유도 어쩌면 공동 협상의 필요성이 높다는 점을 공감했던 것은 아닌가 한다.
김성환 기자 swkim@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