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제휴, 확대하면 수입 판매
1997년 중국 안후이성 우후시 공무원집단이 출자해 설립한 체리자동차가 한국에 처음 알려진 때는 약 20년 전인 2003년이다. 당시 체리자동차는 그야말로 존재감 자체가 없었던 신생 기업이었을 뿐이다. 그러니 한국에서 체리(Chery)를 아는 사람 또한 거의 없었다.
<체리자동차 QQ(위) GM대우 마티즈II(아래)>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체리가 한국에서 주목받았다. 2003년 중국 내수 시장을 겨냥해 내놓은 경차 QQ 디자인이 당시 GM대우 마티즈II와 완전 흡사했기 때문이다. 훗날 체리자동차 관계자를 만났을 때 들었던 얘기는 더욱 흥미롭다. 애초부터 대놓고 마티즈 디자인을 따라했고, 베끼기 자체를 아예 개의치 않았다는 이야기다. 마티즈 뿐 아니라 폭스바겐 제타 디자인도 자랑스럽게(?) 베꼈고 그때마다 분쟁이 일어났지만 중국 시장의 중요성 탓에 갈등은 흐지부지됐다. 실제 짝퉁 디자인의 QQ가 중국 내에서 마티즈보다 인기를 얻자 GM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복잡한 이해 관계에 얽혀 조용히 마무리됐다. 체리자동차가 한국에 남긴 기억은 말 그대로 짝퉁 디자인이 전부였던 셈이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그 사이 체리자동차의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 한국차를 베끼던 회사가 이제 한국차에 기술을 전수하려 한다. KGM이 체리에게 기술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체결한 플랫폼 라이센스는 체리가 보유한 자동차 플랫폼을 KGM이 사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공짜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KGM은 왜 체리자동차를 선택했을까? 이유는 두 가지로 해석된다. 먼저 배터리 파트너인 BYD와의 관계다. KGM은 BEV 등과 관련해 BYD에서 배터리를 공급받는다. 협업을 확대하면 KGM이 BYD 완성차를 판매할 수도 있다. 하지만 BYD는 한국에 이미 직판 체제를 구축해 KGM과 배터리 공급 이외 협업 기회를 차단했다. 따라서 PHEV 또는 EREV 등의 파워트레인 기술을 제공받는 것도 쉽지 않다.
<KG모빌리티 엑티언>
이 얘기는 당장 필요한 기술 파트너를 다시 찾아야 한다는 의미이고 상대적으로 해외 진출이 활발한, 그리고 파워트레인 기술 제공에 우호적인 체리자동차를 선택했을 가능성이다. 아울러 체리 완성차의 한국 내 판매 가능성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가뜩이나 제품군이 부족한 KGM으로선 플랫폼을 받아 KGM 브랜드로 개발, 생산, 판매하는 것 외에 부족한 제품은 체리의 완제품 수입으로 보완할 수 있다. 한국에서 철저히 중국화를 진행하는 형국이다.
그런데 보이지 않게 시선을 잡아당기는 것은 체리자동차의 최대 주주다. 체리차는 민간이 아닌 중국 내 지방 정부 소유 기업이다. KGM은 중국 기업과 손잡은 것이지만 확대 해석하면 중국의 지방 정부와 협력하는 셈이다. 따라서 예상치 못한 정부 변수에 휘말릴 수도 있다. 이런 점을 들어 일부에선 KGM이 궁극적으로 체리자동차 우산 아래 들어가려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흘러나온다.
물론 체리와 손잡은 것은 KGM의 중국 진출 기회 확대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내연기관 중심이어서 KGM의 중국 진출은 쉽지 않다. 설령 BEV를 내놔도 토종 기업을 넘을 가능성이 작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체리 브랜드 차종의 국내 위탁 생산이다. 생산을 맡긴 체리차는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를 붙여 ‘체리’ 브랜드로 수출하는 전략이다. 한 마디로 체리자동차의 해외 위탁 생산 거점이 된다는 것이고 점차 비중이 확대되면 체리차가 KGM을 삼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역할은 과거 상하이자동차 시절 검토됐고 경험한 바도 있다. BYD, 그리고 체리자동차 등의 중국 기업과 협력을 늘리는 KGM이 과연 어떻게 지속적인 미래 경쟁력을 가져갈지 궁금해진다.
<체리자동차 티고 8 프로 PHEV>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