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가치 높이는데 정부 역할 필요
배터리 전기차(BEV)가 생산되는 과정은 명확하다. 먼저 배터리 제조사가 셀을 만들면 팩커(packer)라 불리는 곳에서 완성차에 탑재될 배터리팩을 조립한다. 이후 완성차 공장으로 옮겨진 팩은 자동차와 결합돼 BEV로 판매된다. 이 과정에서 구매자는 보조금을 받고 운행하면 된다. 그리고 운행 과정이 끝나면 보조금이 지급된 만큼 배터리를 회수해 다시 자원으로 쓴다. 해외로 수출되는 중고 전기차는 8년 이하일 때 보조금의 20%를 뱉어내야 한다. 물론 보조금을 받지 않은 8,500만원 초과 전기차는 해당이 없다.
배터리를 회수하는 과정은 역순이다. 완성차에서 분리된 배터리팩은 국토부의 안전검사를 거쳐 잔존 수명이 측정된다. 이후 배터리팩을 재사용하는 과정은 산업부가 맡는다. 팩 내부의 셀을 모듈 단위로 떼어내 사용할 수 있고, 팩 전체를 에너지 저장장치로 쓸 수 있다. 이 과정의 이력 관리 주체가 산업부다.
이후 셀의 모든 성능이 저하된 시점에는 환경부가 ‘재활용’을 명분으로 개입한다. 사용 후 배터리에서 소재를 다시 추출하는 것, 해당 소재를 새로운 셀 제조에 사용토록 뒷받침하는 역할이다. 한 마디로 사용 후 배터리의 ‘안전-재사용-재활용’이 국토부, 산업부, 환경부로 분장된 셈이다. 겉으로 보면 사용 후 배터리 자원화를 위해 3개 부처가 연결돼 있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일관성은 떨어진다. 각 과정의 관리 주체가 모두 다른 탓이다. 사용 후 배터리로 어떤 사업을 할 것이냐에 따라 지켜야 할 규정도 제각각인 셈이다.
사용 후 배터리 재사용 과정이 부처별로 세분화된 이유는 그만큼 관련 산업의 성장성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성장하는 산업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부처 간 물밑 싸움이 치열했고, 보다 못해 기획재정부가 중재자로 나서며 갈등이 일단락됐다.
그러나 이때 골치 아픈 존재가 LFP 배터리다. 삼원계 NCM 배터리는 재사용 또는 재활용 가치가 높아 산업 활성화를 기대한다. 그러나 LFP는 재활용 가치가 낮다. 소재 가격에 비해 추출 비용이 높아 이익 실현 자체가 불가능하다. 경제성이 없으니 민간 사업자도 재활용에 나서지 않는다. 그렇다고 정부가 직접 사업에 착수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사용을 막을 수도 없다. 가격과 안정성 면에서 장점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주력하지만 내년부터 국내 배터리 제조사도 LFP 소재 셀 생산에 착수한다. 덕분에 가뜩이나 치열한 배터리 전기차의 가격 경쟁력 확보가 조금 수월해진다.
그래서 떠올린 아이디어가 재활용 공장 설립 비용 지원이다. 공장 설립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할테니 민간 사업자가 LFP 재활용 시설을 짓고 소재 추출 사업을 하라는 얘기다. 하지만 섣불리 나서는 곳이 없다. 소재 가격이 오르지 않는 한 지속적인 이익 실현이 불가능한 탓이다.
이때 떠올린 아이디어가 자원 비축이다. LFP 소재의 조달처가 대부분 중국이고, 한국 또한 LFP 생산에 뛰어드는 만큼 소재를 추출해 내부 자원으로 비축하자는 얘기다. 당장은 중국의 저렴한 인산철 소재에 의존하지만 비중이 점차 높아지면 언제든 요소수 대란이 일어날 수 있어서다. 한국이 요소를 만들지 못하는 게 아니라 가격 면에서 중국 제품을 따라갈 수 없어 요소 공장이 사라져 발생한 일이 요소수 대란이다.
LFP 배터리 또한 본격 생산에 앞서 이미 사용한 LFP 배터리에서 추출된 소재를 비축하고, 이때 구매자는 정부. 민간 사업자가 소재를 추출하면 정부가 일정 이익을 보장해주는 방식이다. 소재를 비축하고 국내 제조사에 공급하면 안정적인 재활용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때 배터리 기업은 비축분이 비쌀 경우 당연히 중국산을 구매하겠지만 소재 원산지를 따지는 국가로 수출하는 BEV는 얼마든지 비축분을 활용할 수 있다.
업계에선 2030년을 전후로 국내에 사용 후 배터리가 쏟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당연히 LFP 소재 배터리도 예외는 아니다. 따라서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쌓여가는 LFP 배터리에 한숨만 내뱉을 수 있다. 그런데 최근 관련 대책이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그나마 안심하는 대목이지만 속도는 서두를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