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동차 업계에서 2024년 특별한 해로 기억될 전망이다. 그 중에서도 단연 화두는 전기차였다. 연초부터 보조금 체계가 전면 개편되며 LFP 배터리 규제가 이뤄졌고 전기차 화재로 인한 공포감도 확산됐다. 또 브랜드는 이 같은 캐즘을 돌파하기 위해 저가 전기차를 대거 선보였고 유의미한 판매도 기록했다.
이 외에도 쏘나타 택시가 중국 생산으로 부활했고 1톤 디젤트럭은 환경 정책에 따라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었다. 또 법인차 번호판 도입으로 수입차 판매량이 떨어졌고 시청역 사고로 인해 급발진 논쟁이 다시 불붙기도 했다. 국내 완성차는 내수 부진과 수출 증가라는 상반된 결과를 기록했고 이런 가운데 현대차는 누적 생산 1억대를 돌파하며 우리 자동차 산업에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여준 해였다. 이와 함께 현대차와 토요타가 모터스포츠로 의기투합하며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기도 했다. 올 한해 자동차 산업을 뜨겁게 달궜던 내용가운데 핵심으로 꼽히는 소식 10가지를 정리했다.
▲보조금 체계 개편, 사실상의 LFP 배터리 규제
연초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체계가 큰 폭으로 바뀌었다. 개편 방안은 승용과 상용 관계 없이 배터리 에너지 밀도에 따라 보조금을 차등 지원하고 재활용 가능 비중을 따지는 '배터리 환경성 계수' 추가 내용이 핵심이다. 중국산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직접 규제하는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이에 따라 LFP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 보조금이 깎여나갔다. 테슬라 모델 Y RWD 보조금은 195만원으로 지난해 국비 보조금(514만원)과 비교하면 62.1%나 감소했다. 테슬라코리아가 정부 지침을 반영해 판매가를 5,499만원까지 내렸지만 보조금이 깎이며 사실상 가격 인상 효과가 발생했다. 직격탄을 맞은건 중국산 화물차도 마찬가지. BYD T4K의 국비 보조금은 462만원까지 깎여나갔다. 1,200만원을 지원받았던 작년과 비교하면 61.5% 줄어든 셈이다.
이렇다보니 정부의 새 보조금 체계는 전기차 캐즘을 가속화 시켰다는 비판도 받았다. LFP 배터리가 삼원계(NCM) 대비 에너지 밀도가 떨어지고 재활용에 불리한 건 사실이지만 가격이 더 저렴해 전기차의 원가를 떨어뜨릴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 받아왔기 때문이다.
▲현대차·토요타, 모터스포츠로 의기투합
현대차와 한국토요타가 지난 10월27일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현대 N x 토요타 가주레이싱 페스티벌'을 열었다. 두 브랜드가 협력해 처음 한국에서 진행한 이번 행사는 정의선 회장과 토요다 아키오 회장 등 각 사 오너, 그리고 일반 관람객 3,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이후 정 회장과 아키오 회장은 드랠리챔피언십(WRC) 최종전이 열린 일본에서 28일만에 다시 한 번 만났다. 두 사람은 각 팀의 서비스파크를 둘러보며 각 팀 선수와 팀원들을 격려했다. 한켠에서는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 가운데 토요타가 제조사 부문 챔피언을, 현대차가 드라이버 부문 챔피언 타이틀을 나란히 획득하며 의미를 더했다.
업계는 두 회사가 모터스포츠를 계기로 더 넓은 범위에서 협업을 이어갈 수 있을지도 주목하고 있다. 양측이 장기적 관점에서 수소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더욱이 현대차가 이베코에 이어 최근에는 GM과도 손을 잡으며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어 그 주목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캐즘 속 저가 전기차 돌풍
고물가와 고금리로 전기차 판매가 부진했지만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가격대를 내세운 저가 전기차들의 인기는 꾸준했다. 기아 레이 EV가 꾸준한 판매를 이어가는 가운데 EV3가 시장에서 흥행 가도를 달렸고 현대차 캐스퍼 일렉트릭도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평가다.
특히, EV3는 출시 4개월만인 지난달까지 1만2,390대를 판매하며 국내 전기차 판매량 3위로 올라섰다. 레이 EV는 지난달까지 9,907대를 팔며 전년 동기 대비 2배 이상 높은 판매량을 기록 중이며 하반기에 시장에 나온 캐스퍼 일렉트릭도 7,431대를 팔며 순조로운 출발을 알렸다.
흥미로운건 이 외 전기차 판매는 부진했다는 점이다. 현대차 아이오닉5와 기아 EV6는 부분변경을 단행하며 가격을 동결하는 강수를 뒀지만 전년 대비 판매량이 14%, 46.2%씩 감소했다. 꾸준한 수요를 보여주던 현대차 포터 일렉트릭은 57.2%, 봉고 EV는 61.4%나 쪼그라들었다.
▲돌아온 쏘나타 택시, 그런데 중국산?
현대차가 쏘나타 택시 판매를 재개했다. 아산공장에서 생산한 차가 아닌 중국 베이징현대에서 생산해 수입해온 제품이라는 점에서 이슈가 됐고 출시 첫 달만에 602대가 등록되며 단숨에 월간 택시 등록대수 1위로 올라섰다. 지난달 판매량(6,658대) 중 택시는 2,339대로 35.1%에 달한다.
쏘나타 택시가 시장에 복귀한 직후 1위를 차지한 데에는 가격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쏘나타 택시 시작가는 개인택시(간이과세자) 2,254만원, 법인(일반과세자) 2,480만원이다. 최근 중형 택시의 대체재로 각광받았던 르노코리아 QM6 LPe(2,840~3,220만원)나 KGM 토레스 바이퓨얼(3,127~3,706만원)대비 많게는 1,000만원 이상 저렴하다. 더욱이 그랜저(3,891~4,381만원)나 K8(3,299~3,751만원)과 비교해도 연료비나 차값에서 더욱 유리하다.
한동안 택시 시장의 요구를 외면해왔던 현대차가 쏘나타 택시를 다시 공급하고 있는 건 중국 베이징현대 공장 가동률이 낮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각종 세금 등을 고려하면 수익성이 낮지만 중국 공장 가동 비중을 유지하고자 결정한 셈이다.
▲전기차 화재 공포감 확산
잇따른 전기차 화재가 소비자들 사이에서 두려움으로 바뀌었고 실제 판매 감소로 이어졌다. 충전 중 화재가 발생하는가 하면 며칠간 서있기만 하던 전기차에서 갑자기 불이 붙는 등 그 양상도 매우 다양했다. 일각에서는 전기차 충전소를 지상으로 이설하고 전기차의 지하 주차를 금지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국내 전기차 화재 사고는 대부분 외부 충격에 이한 배터리 손상 또는 셀 제조 결함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부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배터리 제조사 공개 및 전기차 배터리 인증제 도입을 발표했지만 실효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BMS 시스템의 고도화를 비롯한 제조사의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시청역 사고, 급발진 vs 페달오조작 논쟁
지난 7월1일 밤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60대 운전자가 몰던 차량이 인도로 돌진해 9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운전자는 급발진 때문에 사고가 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사고가 난 뒤 정상적으로 차가 멈춰서는 영상과 이에 대한 목격담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페달 오조작에 의한 사고 가능성이 언급되며 논쟁이 일었다.
기본적으로 급발진 현상은 여전히 과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정설이다. 현상 재현이 불가능한 탓이다. 그럼에도 일부 전문가 또는 인플루언서들은 최근 시청역 역주행 돌진 사고를 계기로 급발진이 의심된다는 주장을 쏟아냈다. 하지만 급발진을 주장했던 택시 기사의 페달 블랙박스 영상이 공개되자 소비자 여론도 양분됐다. 확인되지 않은 전문가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쪽과 객관적인 사실로만 판단하자는 시각이 팽팽히 맞섰다.
급발진 주장 현상은 대부분 운전자 본인이 작동시키고 있는 페달이 브레이크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차 결함에 의해 급발진이 종종 발생할 수 있다고 믿는 확증편향이 오히려 사고 발생을 부추긴다고 지적한다. 자극적인 급발진 영상에 자주 노출됨에 따라 순간적으로 본인의 착각을 인정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급발진은 일본에서도 이미 논란이다. 고령화에 따라 연간 3,000건 이상의 페달 오조작에 따른 급가속 사고가 발생하고 있어서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페달 오조작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만큼 오조작 방지시스템을 2012년부터 도입해오고 있다. 그 결과 2021년 신차 가운데 해당 장치를 탑재한 차는 93% 달했으며 사고율 역시 10년 전에 비해 50% 가까이 줄었다. 따라서 한국도 비슷한 예방 장치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환경을 위한 결정, 1톤 디젤트럭 단종
지금까지 1톤 트럭 시장을 주도해온 건 디젤이다. 하지만 올해 1월부터 대기관리권역의 대기환경개선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현대차 포터와 기아 봉고 등 소형 택배 화물차와 어린이 통학차의 경우 LPG와 전기차만 신규 등록이 가능해졌다. 그만큼 연 16만대 시장의 주도권을 누가 가져갈지 기대를 모았고 승자는 LPG 트럭으로 기울었다. 전기차의 단점과 캐즘에 따른 반사 이익까지 더해지며 LPG 1톤 트럭은 높은 판매를 기록했다.
가장 큰 인기요인은 경제성이다. 연료비 자체가 저렴할 뿐만 아니라 기존 디젤 트럭 대비 유지비 측면에서 뛰어나다는 점이 주요 구매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LPG 트럭은 연간 1만8,000km 주행 시 동급 디젤 대비 약 50~60만원의 유류비를 절감할 수 있다. 디젤차와 달리 배기가스 저감장치(SCR)에 주입하는 요소수를 구매할 필요도 없다.
이 외에도 새로 개발된 LPG 2.5 터보 엔진은 터보차저를 적용해 저속에서의 토크를 개선하고 디젤 대비 출력을 24마력 높여 최고출력 159마력의 우수한 성능을 제공한다. 또 미세먼지와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대폭 줄여 하이브리드 차와 동등한 수준의 친환경성을 확보, 3종 저공해자동차 인증도 획득하는 등 우수한 상품성이 소비자 선택을 이끌어냈다는 분석이다.
▲국내 완성차, 내수 부진과 수출 증가의 양극화
올해 국산차는 내수 판매 부진이 발목을 잡았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올해 1∼11월 국내 신차 등록 대수는 총 149만8331대로, 작년 동기(159만6004대) 대비 6.1% 감소했다. 올해 연간 등록 대수는 164만대 정도로 예상되는데 이는 지난 2013년 154만3565대 이후 가장 적은 수치다. 이 경우 올해 국내 신차 등록 대수는 11년 만에 최소를 기록할 전망이다.
고물가, 고금리의 장기화를 비롯해 전기차 판매 둔화 등이 내수에 악영향을 미친 가운데 경유차 등 내연기관차를 찾는 소비자가 크게 준 것이 등록 감소 이유로 지목된다. 이와 함께 올해 하반기 임금 및 단체협상에 따른 생산 차질 등으로 생산이 작년 대비 소폭 감소한 것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반면, 수출은 정 반대 그래프를 그리며 청신호를 키웠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수출량은 253만 4974대(누적 수출액 동기 최고액 648억 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수출액은 역대 11월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56.4억 달러(22만 8827대)며 중형 3사에서 증가(한국지엠 +9.1%, KGM +219.3%, 르노코리아 +197.5%)해 실적을 뒷받침했다. 내수 침체를 수출로 극복한 셈인데 전문가들은 급격한 변화가 예상되는 내년에는 균형 있는 발전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법인차 번호판 도입, 수입차 판매량 뚝
법인용 차의 사적 이용을 막기 위해 도입한 연두색 번호판이 어느정도 효과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1~11월 1억 원 이상의 고가 수입차 판매 대수는 5만6989대로 전년 동기(7만245대) 대비 19.9% 감소했다. 특히, 이 가운데 법인 명의로 신규 등록된 차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8% 줄어든 3만2019대로 집계됐다. 고가 수입 법인차 판매가 전년 대비 감소하는 것은 약 8년 만이다.
이처럼 고가 수입 법인차 판매량이 감소한 데는 연두색 번호판 제도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올해부터 출고가 8000만 원 이상의 법인용 승용차에 연두색 번호판을 부착하도록 했다. 연두색 번호판에 대한 거부감으로 인해 고가 수입차를 법인 명의로 구매하는 일이 줄어들었다는 분석이다. 반대로 올해 들어 1억 원 이상 수입차 가운데 법인이 아닌 개인 신규 등록 대수는 2만4970대로 전년 대비 오히려 1.43%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 누적 생산 1억대 돌파해
현대자동차가 누적 생산 1억대를 달성했다. 1967년 자동차 산업에 첫 발을 내딛은지 57년만의 기록이다. 현대차는 창립 1년만인 1968년 11월 울산공장에서 1호차 '코티나'를 생산했다. 1975년에는 우리나라의 첫 고유 차종 포니를 양산해 자동차 대중화의 계기를 열었다. 1986년에는 100만대 생산을 넘겼으며 이후 10년만인 1996년에는 1,000만대 생산을 달성했다. 2013년에는 누적 생산 5,000만대를 넘어서는 등 생산에 가속도가 붙었다.
창립 이후 지금까지 현대차는 자동차 생산에 있어 진정성을 갖고 매일 한 걸음 나아갔다. 그 결과 누적 생산 1억대 달성을 할 수 있었다. 국내 자동차 산업읠 발전과 경쟁력을 살펴볼 수 있는 주요 지표가 올해 나온 것이다.
회사는 '끝이 아닌 새로운 출발선으로 다가오는 전동화 시대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1억1번째 차는 아이오닉5로 서해 최북단 백령도 소재 군 부대에 근무하며 생애 첫 차를 선택한 20대 소비자 김승현 씨에게 인도됐다.
오토타임즈 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