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8일 ‘세계 여성의 날’ 맞이해 조명
-브랜드 안착을 이끈 여성 리더
로터스가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며 브랜드 대표 여성 리더였던 헤이즐 채프먼(Hazel Chapman)을 조명하는 시간을 마련했다고 7일 밝혔다.
헤이즐 채프먼은 로터스 창립자로 잘 알려진 콜린 채프먼(Colin Chapman)의 아내이자 공동 창립자다. 로터스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는 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그녀의 결혼 전 이름은 헤이즐 패트리샤 윌리엄스(Hazel Patricia Williams). 1927년 런던 북부에서 태어난 헤이즐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피난보다 집에 있는 게 더 낫다”라는 모친의 말씀대로 어머니의 양모 가게에서 일을 도우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머니의 강한 성격을 그대로 빼 닮아 독립적이고 학구열도 남달랐다.
콜린과의 인연은 17세무렵 런던에서 열린 한 사교 댄스 파티에서 시작했다. 둘은 사랑에 빠졌지만 헤이즐 부모는 예비 사위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지어 둘 사이를 떼어놓기 위해 이사까지 갈 정도였다. 이에 굴하지 않은 콜린은 자차로 그녀의 등굣길을 날마다 책임졌다. 이 와중에 마치 ‘랩타임’ 경신하듯 이동시간을 줄이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둘 사이가 급속도로 가까워진 계기는 다름아닌 자동차였다. 헤이즐은 1920년대생 여성으로서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결국 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었던 헤이즐의 부모는 집 뒤 차고에서 딸이 남자친구와 함께 자동차를 만들도록 허락했다. 장난감도 아니고 실제 레이스카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게 바로 1948년 ‘로터스 마크 Ⅰ’이다.
이와 함께 후속작인 ‘마크 Ⅱ’ 개발에 즉각 착수한 그들은 오스틴 7 섀시를 밑바탕 삼아 성능 업그레이드에 치중했다. 그러던 중 콜린이 공군에 입대했고 그녀는 전역을 기다리면서 미완성 상태의 마크 Ⅱ에 포드 엔진을 장착하며 개발을 이어갔다.
전역 후 둘은 그들이 만든 차로 주말마다 자동차 경주에 참가했다. 서로 랩타임 경쟁을 치르기도 했는데 헤이즐은 때때로 콜린을 앞지르며 레이스 판에서 유명세를 탔다. 그 만큼 그녀는 엔지니어로서의 능력뿐 아니라 레이서로서도 탁월한 재능을 뽐냈다.
로터스 마크 Ⅲ까지 경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채프먼 커플은 이제 레이스카 제작을 ‘사랑의 취미’가 아닌 본격적인 사업의 영역으로 확장시키고자 했다. 1952년 1월, 헤이즐이 가진 25파운드를 밑바탕 삼아 콜린과 함께 ‘로터스 엔지니어링’을 설립했다. 둘은 이듬해 10월 결혼했는데 ‘팀 로터스’ 로고가 새겨진 버스를 웨딩카로 사용하는 등 역시 평범한 커플은 아니었다.
실제 헤이즐은 로터스 성장에 큰 기여를 했다. 함께 할 직원을 모집하고 소비자 케어는 물론 르망 24시 레이스, 인디애나폴리스 500 등 주요 모터스포츠 대회에 참석해 팀을 이끌었다. 동시에 콜린이 로터스에서 풀타임으로 일할 수 있도록 세 자녀의 육아와 교육을 전담하는 등 ‘엄마의 역할’까지 충실히 수행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1969년 이스트 칼튼으로 이사하며 진흙투성이 밭을 훌륭한 정원으로 탈바꿈시켰는데 오늘날까지 일년에 한 번씩 지역 원예가들에게 개방될 만큼 굉장히 아름다운 정원을 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콜린에겐 휘발유 냄새 가득한 헤델 공장과 180도 대비되는 일상의 스트레스를 녹이는 평온한 안식처였다.
또 헤이즐은 ‘도그 하우스(The Dog House)’라는 여성 모터스포츠 클럽을 만들며 로터스의 사업 영역을 확대하는 데 이바지했다. ‘남자의 전유물’과 같은 레이스에 여성의 지위를 확장시켰다는 점은 시사하는 의미가 크다.
이 같은 그녀의 헌신으로 로터스는 1962년부터 1978년까지 7개의 포뮬러 원 컨스트럭터 챔피언십과6개의 드라이버 챔피언십을 획득하며 최고의 모터스포츠 제조사로 발돋움했다. 짐 클라크와 그레이엄 힐, 에머슨 피티팔디, 마리오 안드레티, 아일톤 세나 등 전설적인 F1 선수들이 그녀와 함께했다.
1982년, 콜린 채프먼이 54세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심장마비. 헤이즐은 로터스의 미래를 위해 새로운 투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British Car Auctions에 지분을 매각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콜린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로터스는 아일톤 세나를 앞세워 F1에서 1987년까지 맹활약했다.
이후 로터스 F1 팀은 채프먼 가족 소유로 유지되었고 1992년엔 아들 클라이브 채프먼이 ‘클래식 팀 로터스’를 설립하며 헤이즐과 함께 로터스의 모터스포츠 유산을 보존하는 가족 사업을 이어갔다. 이처럼 ‘로터스’ 그 자체였던 헤이즐 채프먼은 2021년, 9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