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3년 유예, 이후는 무조건 탄소 강제
EU가 자동차기업의 생존을 이유로 탄소 규제 시점을 결국 3년 뒤로 미뤘다. ㎞당 95g인 지금의 탄소 배출 기준을 올해부터 93.6g 이하로 설정하고 초과 배출량에 대해선 g당 95유로(약 14만6,000원)의 탄소벌금을 부과하는 방안의 시행 시기를 2028년으로 연기했다는 내용이다. EU 27개국과 유럽 의회 표결을 거쳐야 하지만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의 주요 국가가 규제 완화를 요구했던 만큼 유예는 사실상 확정이다.
그러자 관련 업계에선 다양한 해석이 쏟아지는 중이다. 특히 기준 미충족 위기에 처했던 회사들이 벌금 미부과에 안도한다. 동시에 BEV 판매 재촉에 잠시 숨통이 트였다고 가슴을 쓸어 내린다. 실제 제조사들은 EU가 올해부터 규제를 적용하면 최대 23조원의 과징금을 내야 하고, 막대한 과징금이 기업 재정 위기를 불러 고용 감소는 물론 최악의 경우 파산에 몰릴 수 있다는 경고성(?) 읍소를 해왔다. 과징금을 피하려면 탄소배출권을 사야 하는데 이때 배출권 판매 기업이 대부분 미국 또는 중국 회사라는 점이 받아들여진 셈이다. 환경 측면에서 후퇴했다는 비판에도 EU 내 산업 위기를 눈감을 수 없었다는 뜻이다.
흥미로운 점은 탄소 규제 유예를 바라보는 두 가지 해석이다. 내연기관 시대의 종말을 최대한 늦추려는 쪽에선 EU의 선택이 현명하다고 칭찬한다. 내연기관은 지속될 수밖에 없고 BEV 확대는 바람직한 산업적 선택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BEV에 필요한 전기를 만들 때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점을 지목하며 EV를 공격한다.
그러나 EU의 입장은 확고하다. 화석연료로 동력을 얻는 방식은 결국 인류 모두의 재앙으로 다가온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재앙은 경제적 소득 차이와 무관하다는 점도 감추지 않는다. 실제 환경적 재앙은 부자 나라, 가난한 나라를 구분하지 않고 지역도 나누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바다와 육지를 선택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국가 간 탄소 배출 규제 합의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탄소 배출 과다가 자연 재앙을 일으킬 때 ‘나만 아니면 돼’라는 복불복 심리가 작용하는 탓이다.
그래서 EU는 배출 기준에 관해 3년을 유예할 뿐 그 이후 기준 강화는 반드시 실행한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어떻게든 내연기관 숫자를 줄여 기후 문제에 대응한다는 방침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유예는 자동차 기업 스스로 생존 전략을 찾으라는 일종의 마지막(?) 경고 다. 이 경우 EV 전환이 주춤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3년 동안 EV 전환 속도를 높여야 그 이후 생존이 가능하다. 친환경 산업 전환을 통해 유럽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EU로선 내연기관의 판매 중단을 강제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만약 규제 탓에 문을 닫는 기업이 있다면 이는 말 그대로 친환경을 따르지 않아 발생한 기업 스스로의 문제일 뿐 EU의 친환경 전략은 오히려 올바른 판단임을 입증하려 한다.
사실 EU의 탄소 배출 규제 3년 유예를 바라보는 제조사의 속내는 저마다 다르다. 시간은 벌었으나 그래도 빠르게 대응해 경쟁자와 격차를 벌리려는 곳도 있고 주어진 시간에 최대한 내연기관을 많이 내보내 수익을 쌓아두려는 곳도 있다. 물론 시간을 어떻게 쓸지는 기업마다 다르지만 핵심은 친환경 전략을 준비하지 못한 기업에게 3년이 빠듯한 시간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미국 자동차기업도 트럼프 2기 정부 임기를 친환경 전환 시간으로 여긴다. 트럼프 대통령이 BEV 혜택을 축소하고 내연기관 유지 정책을 내세우지만 제조사는 일단 전환 시간 확보에 의의를 둔다. EU나 미국 등이 궁극적으로 주도하려는 산업이 바로 친환경 사업이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친환경 과제를 뒤로 미루어 놓은 것 같지만 이미 과제 해결을 위한 준비는 모두 마친 상황이다. 그저 제출 시기만 조금 뒤로 미루어졌을 뿐이다.
권용주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