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 서비스 경험 과정이 중요
지난 2015년 현대자동차가 프리미엄 브랜드로 ’제네시스(GENESIS)’를 런칭했다. ‘현대(HYUNDAI)’ 브랜드는 ‘가치적 한계’가 분명했던 탓이다. 아무리 고급차를 만들어도 ‘현대’ 뱃지를 부착하는 순간 가격은 물론 제품 수용성이 떨어졌다는 의미다. 제품 개발의 접근 방법부터 달리하고 철저하게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를 겨냥했다고 설명해도 소비자 시각에선 프리미엄은커녕 그냥 ‘현대차’였을 뿐이다.
그런데 프리미엄 브랜드로 ‘제네시스’가 등장하자 소비자 수용성에 변화가 일어났다. 철저히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 그 중에서도 벤츠를 겨냥한다는 제네시스의 넛지 마케팅에 따라 국내에서 ‘제네시스 vs 벤츠’ 구도가 조금씩 생겨났다는 뜻이다. 물론 오랜 시간 글로벌에서 확고 부동한 프리미엄 브랜드 ‘벤츠’는 제네시스의 존재조차 신경 쓰지 않았지만 적어도 국내에선 그렇다는 얘기다.
흔히 독일 프리미엄 3사라 하면 벤츠, BMW, 아우디를 꼽는다. 따라서 제네시스는 등장 때부터 경쟁사로 독일 3사를 지목했다. 게다가 당시는 국내 수입차 시장의 성장과 하락이 이들 3사에 달렸을 만큼 입지 또한 탄탄했다. 그런데 이때 시장에 뛰어든 제네시스의 성장은 기대 이상의 결과로 연결됐다.
현대차와 수입차협회 통계 등에 기반해 제네시스, 벤츠, BMW, 아우디 등의 연도별 경쟁 시장 점유율은 ‘제네시스 vs 벤츠’ 구도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먼저 브랜드 출범 이후 세단 및 SUV 라인업이 갖추어진 2019년, 제네시스 국내 판매는 5만6,801대로 벤츠의 7만8,133보다 낮다. 그러나 2020년부터 제네시스, 벤츠, BMW, 아우디 등 4개 브랜드의 경쟁 시장 변화가 일어난다.
2020년 제네시스가 10만8,286대 판매로 늘어났지만 벤츠는 7만6,879대로 전년 대비 큰 변화가 없다. 이때 경쟁 시장 점유율은 제네시스 40.2%, 벤츠 28.6%, BMW 21.7%, 아우디 9.5% 등이다. 그리고 2021년에는 제네시스의 경쟁 시잠 점유율이 45.3%로 확대됐다. 반면 같은 기간 벤츠 점유율은 24.9%로 떨어졌고 아우디 또한 8.4%로 하락했다. 반면 BMW는 21.4%로 전년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다. 제네시스가 입지를 늘릴수록 벤츠가 정체되는 움직임이 나타난 셈이다.
2022년에는 제네시스와 벤츠의 경쟁 관계가 더욱 명확하게 드러났다. 제네시스 판매가 전년 대비 줄어든 11만1,610대로 경쟁 시장 점유율이 38.2%로 내려가자 벤츠는 사상 최대 판매인 8만976대로 점유율 27.7%를 기록했다. 전년과 비교하면 무려 3.2%P 오른다. BMW와 아우디 또한 소폭 하락했지만 점유율 변화가 거의 없었음을 감안하면 소비 시장에서 ‘제네시스 vs 벤츠’ 구도가 이전 대비 훨씬 선명해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흥미로운 점은 지난해다. 또다시 제네시스가 벤츠의 점유율을 크게 앞섰다. 제네시스 판매는 13만674대로 경쟁 시장 점유율이 46.6%로 사상 최대에 달한 반면 벤츠는 6만6,400대로 하락해 점유율도 23.7%에 머물렀다. 연간 판매가 7만3,754대로 전년 대비 별다른 변동이 없었던 BMW는 벤츠 하락 덕분에 점유율이 26.3%로 오르는 반사 효과를 누렸다. 그러나 업계에선 아우디의 부진이 컸던 만큼 BMW가 아우디 수요층을 흡수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자 제네시스를 판매하는 기업은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최근 다시 독일 3사, 그 중에서도 벤츠와 BMW를 주목하는 시선이 다시 고개를 든다. 제품은 경쟁 선상에서 비교될 수 있어도 프리미엄 브랜드 제품을 구매하고 경험하는 과정에선 제네시스의 경쟁력이 약한 탓이다. 제품을 알아보려 할 때 별도 전시장이 거의 없고 구매 이후 서비스 과정에서도 ‘현대(Hyundai)’ 인프라를 공유해야 한다. ‘현대(Hyundai)’와 차별화되기 위해 제네시스를 선택했지만 제품을 제외하면 모든 게 다시 현대 브랜드로 들어가는 탓이다. 프리미엄 브랜드의 이미지 제고 측면에서 제네시스의 ‘현대 속으로’는 그리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제네시스도 내부적으로 현황 파악은 이미 하고 있다. 그러나 판매 채널에서 제네시스 분리는 내부적 저항 탓에 어렵고 서비스 네트워크 또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제네시스 브랜드를 구매한 소비자는 ‘현대’와 다른 시선, 다른 접근을 원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브랜드 런칭 초창기 국내 시장의 이점을 살려 ‘제네시스 vs 벤츠’ 이미지 구축은 성공했지만 판매와 서비스 경험 차별화는 아직이다. 프리미엄 브랜드 가치가 단순히 제품만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제네시스 vs 벤츠’는 그저 신기루에 머물 수 있으니 말이다.
박재용(공학박사, 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