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인건비, 국가는 일자리
독일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면 대당 3,307달러의 인건비가 필요한 반면 모로코는 106달러면 충분하다. 두 나라의 1대당 인건비 차이는 무려 3,201달러(한화 약 440만원)에 달한다. 같은 차종을 만들어 동일 가격에 판매한다면 모로코에서 만들 때가 훨씬 이익이다.
보고서를 내놓은 곳은 컨설팅기업 울리버와이만이다. 이들이 내놓은 자동차 1대당 인건비 순위에 따르면 한국은 789달러(108만6,000원)에 달하는데 일본의 769달러보다 높다. 눈여겨 볼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은 1,341달러(약 181만9,000원)로 독일, 영국(2,333달러), 이탈리아(2,067달러), 프랑스(1,569달러) 다음으로 높다. 물론 신차 1대에 포함된 인건비는 단순히 생산만 포함되지 않는다. R&D를 모두 합친 금액이다. 동시에 판매 차종의 종류도 가리지 않는 평균이다.
울리버와이만 보고서에 따르면 전반적으로 1대당 차 값에 포함된 인건비는 유럽연합 지역이 매우 높고 미국과 캐나다가 뒤를 잇는다. 반면 남미의 대표적인 자동차 생산 국가 멕시코는 305달러로 미국 대비 4배 가량 저렴하다. 미국 빅3를 비롯해 글로벌 국가들이 멕시코에 완성차 공장을 운영하는 배경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은 597달러로 한국 대비 192달러(약 26만원) 낮다. 그러나 모로코, 루마니아(273달러), 튀르키예(414달러)보다 높다. 체코(691달러)보다 100달러 가량 낮지만 2019년과 비교하면 24% 올랐다. 같은 기간 한국은 차 값이 오르면서 인건비 비중은 15% 낮아졌는데 중국은 치열한 가격 전쟁이 벌어지며 인건비 비중이 상대적으로 많이 오른 셈이다.
그럼에도 중국의 1대당 인건비는 여전히 한국 대비 낮다. 그리고 낮은 인건비가 차곡차곡 쌓여 제품 가격에 반영되고 저렴함을 앞세워 해외 시장을 노크한다. 그러자 남미,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소득이 적은 국가에서 중국 자동차의 시장 확대가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한때 한국이 가격을 무기 삼아 수출을 늘렸던 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
그래서 한국의 전략은 투트랙이다. 기존 선진 시장 공략에 애를 쓰되 신흥 시장 개척에 주력한다. 하지만 두 시장의 상황이 과거와 많이 다르다. 미국과 유럽은 관세 장벽을 세우기에 한창이고 동남아 등도 자국 브랜드를 만들거나 저가의 중국차가 밀려들며 경쟁이 거세다. 한국산 자동차가 세계 곳곳으로 배달, 판매될 수 있는 입지가 자꾸 줄어드는 게 걱정이다.
그렇다고 인건비 비중을 낮추는 것은 쉽지 않다. 손쉽게 비중을 낮추려면 가격을 올리면 되지만 올릴수록 중국의 저가 공세를 막아내는 게 어려워진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한국의 자동차 생산 규모를 유지하는 것은 이제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줄어들 수밖에 없는 자동차 부문 일자리를 새로운 산업으로 전환시키는 게 대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자동차 부문의 양적 성장 시대는 이제 끝났다는 얘기와 같다.
정부가 도와주는 것도 한계가 분명하다. 세금 인하로 소비를 촉진해도 이는 미래 수요를 앞당길 뿐 근본적인 처방은 아니다. 한계에 봉착한 내수 판매를 늘려봐야 유의미한 결과가 도출되지 않는다. 차라리 새로운 과제의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게 보다 현명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이 자동차에 적용되면 제품 경쟁력으로 연결될 수 있어서다. 어떤 공산품이든 우선은 제품력이 뒷받침돼야 가격도 따라 올릴 수 있어서다. 한국에서 자동차산업의 비중을 고려할 때 수출이 어렵다는 것은 엄청난 위기다. 하지만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 R&D 부문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선제적인 제품 개발에 대응토록 하는 것, 지금은 이런 판단이 중요할 때다.
권용주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