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 GR 히스토리 ②] "왜 이 정도 가지고 멈춰?"

입력 2025년08월12일 10시55분 박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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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에서 계속) 모리조는 완주했다. 밤을 세우고 엔진을 뜯고 개조하기를 반복한 중고 토요타 알테자로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서킷을 돌았다. 

 


 

 그리고 아무도 몰랐다. 어쩌면 알아도 모른 체 했을 지 모른다. 토요타라는 이름은 공식 기록 어디에도 없었고 알테자를 몬 모리조 라는 드라이버가 토요타 창업주의 3세, 토요다 아키오라는 사실도 극소수만 알고 있었다. 그저 서킷에서는 모리조라고 불렸을 뿐이다.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는 뉘르부르크링의 피트라인 어딘가에서 쾌재를 불렀다. "이제 알겠다 이게 차라는 것이구나!" 데이터가 말해주지 않는 진동, 설계가 설명하지 못하는 미끄러짐, 수치화되지 않은 불안감과 고장 직전의 느낌. 이 모든걸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느꼈다. 그렇게 모리조는 기업인이 아닌 한 명의 자동차 마니아가 되어 있었다. 

 

 이 기회를 만든 사람은 토요타 전설의 테스트 드라이버 나루세 히로무였다. 2000GT, 셀리카, 수프라까지 토요타를 상징했던 걸출한 스포츠카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나루세는 그를 회장 아들이라고 부르지 않았고 굽실대거나 특별 대접을 하지도 않았다. 드라이버도 아닌 사람에게 무심히 차 키만 건네줬을 뿐이다.

 


 

 나루세는 서킷 한 바퀴가 말보다 낫다고 했다. 차는 말이 없으니, 인간도 말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나루세는 토요다 아키오를 서킷에 세웠고 한 바퀴, 또 한 바퀴, 그리고 24시간 동안의 완주를 만들어냈다. 조직도 아니었고 프로젝트도 아니었다. 단지 고집이었고, 그 고집에 그는 사로잡혔다.

 

 뉘르부르크링에서 돌아온 토요다 아키오는 사무실에 앉아 있기가 어려워졌다. 회의의 언어는 여전히 익숙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동료들이 이해되지 않는 말들을 듣는 것 같았다. 내구성, 성능, 연료 효율 같은 단어들이 공허하게 들렸다. 실현 가능성, 시장성 이라는 단어는 현실이 아닌 핑계를 대신하는 단어 처럼 느껴졌다. 그가 다시 서킷으로 향한 이유이기도 했다.

 

 한 번이 아니라 계속이었다. 해마다, 새 차가 나올 때마다, 토요다 아키오는 차를 끌고 서킷에 섰다. 이곳에서만큼은 모리조였고 여전히 익명이었지만 이제는 그 안에 결심이 있었다. 모터스포츠를 통해 터득한 노하우로 좋은 차를 만들겠다고. 

 

 그가 이끌던 가주 레이싱의 외양도 달라졌다. 일부러 완성되지 않은 차를 몰고 서킷에 나서고 일부러 깨지기 좋은 환경에서 달렸다. 부서지고, 미끄러지고, 멈추고, 그러다 다시 달리며 차는 다듬어졌다. 정제된 수치보다 피드백이 더 많은걸 말해줬고, 카탈로그에는 써져 있지 않은 감각이 소비자에게 더 큰 감동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던 중 하나의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렉서스 LFA.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르는 토요타의 슈퍼카 프로젝트였다. 본래 사내의 조용한 연구 과제로 출발했지만 나루세와 아키오가 손을 댄 순간부터 차원이 달라졌다. V10 사운드 튜닝부터 풀카본 섀시, 전례 없던 테스트 프로그램까지, 이 차는 토요타의 한계를 시험하는 도구인 동시에 ‘우리는 이런 차도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였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간 건 아니었다. 수익성도 낮았고 출시 이후의 반응도 미묘했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 차는 경영을 위한 모델이 아니라 철학을 위한 상징이었다.

 

 그리고 그 상징이 완성되기 직전 나루세가 떠났다. 뉘르부르크링 인근의 도로에서 마지막 테스트 주행 중 세상을 떠났다. 그가 사랑하던 서킷 옆에서 자신이 만든 차와 함께. 그 소식을 들은 아키오는 모든 것을 멈추고 싶었다고 회고한다. 모리조라는 이름도, 가주 레이싱도, 서킷도, 모든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다고.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서러움을 뒤로 하고 할 일을 했다. 나루세의 비보를 접한 날은 대규모 리콜사태 이후 주주총회에 참석해야 하는 날이었다. 나루세가 살아 있었다면, 분명히 한 소리를 했을 일이었기 때문이다. “왜 이 정도 가지고 멈춰?” 라고. 

 


 

 그래서 그는 계속했다. GR이라는 이름을 공식 부서로 만들었고 LFA 이후에는 GRMN이라는 고성능 트림을 더 나아가 GR86, GR수프라, GR야리스, GR코롤라로 이어지는 본격적인 퍼포먼스 라인업들이 나왔다. 이제 많은 이들이 모리조 그리고 가주레이싱에 열광한다. 

 

 예전처럼 이름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 ‘도요타의 회장’이 아니라 ‘마스터 드라이버’로 불리는 지금의 토요다 아키오는 여전히 가장 먼저 차에 타고, 가장 늦게 서킷을 떠난다. 그의 신념은 더 이상 혼자만의 고집이 아니다. GR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엔지니어와 디자이너, 정비사, 그리고 드라이버들이 하나의 언어를 공유하게 됐다. 달려봐야 안다는 그 말은 이제 팀 전체의 원칙이 됐다.

 

 가주레이싱, GR은 단순한 퍼포먼스 디비전이 아니다. 그것은 실패를 견디고 기록보다 감각을 믿으며 승부보다 진화를 택한 사람들의 브랜드다. 그렇게 GR은 문화가 되었고, 철학이 되었다. 그리고 모리조는 그 이름을 등에 지고 여전히 달린다. 나루세가 일러준 방식 대로.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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