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야 할 장벽 너무 많아
중국 지리그룹 산하 프리미엄 브랜드 ‘지커(Zeekr)’의 국내 출시가 임박했다. 공식 판매사도 정해졌고 투입 제품도 결정됐다. 지커 한국 홈페이지에 따르면 첫 차종은 SUV 7X로 전망된다. 중국 내에서 저사양은 한화 약 4,500만원, 고사양은 5,700만원 내외 가격이다. 크기만 보면 기아 쏘렌토 정도에 해당된다.
<사진: 지커코리아 홈페이지>
주목할 점은 ‘프리미엄’이다. 지커는 스스로를 ‘프리미엄’ 브랜드로 소개한다. 하지만 한국 소비자는 중국 프리미엄을 듣고 이미 몇 가지 전제를 떠올린다. 중국 전기차는 BYD 수준의 가격이 돼야 하고 프리미엄이라면 인지도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커를 아는 국내 소비자는 거의 없다. 자동차 업계에서도 지커를 처음 듣는 이가 대다수다. 그래서 중국차인데 비싸게 산다는 감정적 저항을 뚫어야 하는, 시작부터 가장 난이도 높은 방식으로 상륙한다.
이런 상황에서 신생 전기차 브랜드가 살아남는 방식은 명확하다. 뾰족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테슬라는 모델S라는 최고급부터 탑다운 방식으로 제품을 선보였고 슈퍼차저라는 신선한 충전 방식으로 주목을 끌었으며 최근에는 자율주행이라는 불완전한 기술조차 ‘꿈을 보여주는 서사’로 만들었다. 논란이 수십 번 터져도 상관없다. 그 서사 자체가 프리미엄으로 인식된다.
동시에 폴스타는 볼보에서 파생됐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이를 기술적 신뢰도와 서비스 네트워크 접근성이라는 장점으로 깔고 시작했다. 이 같은 장점 위에 폴스타는 스칸디나비안 감성이라는 모호하지만 소비자에게 쉽고 매력적인 언어, 그리고 퍼포먼스 브랜드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BYD는 가격이다. 그리고 기술만은 결코 저렴하지 않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특정 시장만을 위한 전기차를 뚝딱 만들어낼 정도로 발 빠르게 움직인다. 하이엔드 제품군 덴자, 프리미엄 브랜드 양왕은 어쩌면 BYD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 라고 느껴질 정도다. 이 전기차를 많이 팔아 지구의 온도 상승을 억제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한다.
그렇다면 지커는? 프리미엄을 제시하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키워드가 없다. BYD 경쟁 정도로 여겨질 뿐이다. 물론 지커 스스로 강조하는 기술적 자산이 있다면 자율주행이다. 하지만 지커가 한국 시장에서 언급하는 자율주행 레벨3 기술은 지금의 규제와 보험 체계, 고정밀 지도, 범용 V2X가 준비되지 않은 현실에서 당장 적용되기 어렵다. 설령 이를 도입한다 해도 비용이 문제다. 차세대 차량용 칩 ‘토르(Thor)’를 두 개나 사용하고 라이다 센서를 다섯 개 탑재한 시스템이다. 비용이 꽤 비싸다는 뜻이다.
<사진: 지커코리아 홈페이지>
지커의 미래 전략은 기술과 프리미엄 사이에 걸쳐 있다. 그러자면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국내 소비자는 시간이 증명하는 제품의 신뢰를 중요하게 여긴다. 프리미엄을 내세워도 소비자가 인정하려면 오랜 시간 끊임없는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 당장 한국에서 성과를 얻기 어려운 이유다.
사실 지커는 폴스타와도 비교될 수밖에 없다. 지리홀딩스 산하 두 브랜드가 공유하는 부분이 많고 지향점과 가격대도 겹치는 탓이다. 둘 가운데 폴스타는 볼보라는 안정된 울타리 안에서 디자인이라는 언어로 제품을 정의했다. 반면 지커는 이제 정의를 내려야 한다. 전기차 시대의 소비자가 디자인, 가격, 친환경적 내러티브, 기술의 선도성 중 하나를 통해 브랜드를 기억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무엇으로 소비자 머릿속에 각인될 것인지 제시해야 한다. 소비자는 인정 여부만 판단할 뿐이다. 그래서 결국 질문은 하나다. “지커가 한국에서 프리미엄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대답은 시장이 알려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