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이겼어도 똑같이 축하했을 것"
-'경쟁의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던져
-그룹 내에서도 경쟁 유도, '좋은 차 만들기' 박차
토요다 아키오 회장이 프리젠테이션 시작부터 현대자동차 이야기를 꺼내 화제를 모았다.
아키오 회장은 9일 일본 치바 마쿠하리 멧세에서 열린 '2026 도쿄오토살롱' 프레스 컨퍼런스에 참석해 지난해 월드랠리챔피언십(WRC) 시즌을 돌아보며 현대차를 직접 언급했다. 토요타는 이 경기에서 제조사, 드라이버, 코드라이버 부문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며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바 있다.
아키오 회장은 지난 해 우승(트리플 크라운)과 관련해 현대차의 축하를 받지 않았냐는 질문에 "현대차와 토요타가 최상위 무대에서 공개적으로 경쟁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만약 그들(현대차)이 이겼다면 당연히 축하받아야 할 일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한 의례적 언급과는 결이 달랐다. 아키오 회장은 지난해 WRC 최종전이 일본에서 열렸고 현대차 수뇌부가 직접 현장을 찾았던 사실까지 언급하며 경쟁의 맥락을 구체적으로 짚었다. 토요타가 막판에 극적인 역전으로 제조사 챔피언을 차지했지만 애초에는 현대차의 우승을 예상하고 광고 시안까지 준비했다는 뒷이야기도 공개했다.
토요다 회장은 이 과정을 ‘콜 앤 리스폰스(Call and Response)’라는 표현으로 설명했다. 경쟁 브랜드 간에 주고받는 공개적인 메시지와 반응이야말로 모터스포츠가 가진 건강한 문화라는 의미다. 실제로 토요타 가주 레이싱은 지난해 신문 광고를 통해 현대차의 선전을 먼저 축하했고 이에 현대차가 축하 메시지로 화답하며 업계 안팎에서 화제를 모았다.
이 같은 발언은 프레젠테이션의 도입부에서 의도적으로 배치됐다. 토요타가 이번 오토 살롱에서 내세운 ‘매치업(Match-up)’이라는 테마와도 맞닿아 있다. 경쟁을 숨기거나 완화하는 대신, 정면에서 드러내고 즐기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양사의 관계는 광고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현대차그룹과 토요타는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현대 N x 토요타 가주 레이싱 페스티벌’을 공동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정의선 회장과 토요다 회장은 WRC 차에 함께 탑승해 도넛 주행을 선보였고 메인 무대에서 포옹을 나누며 서로의 모터스포츠 철학을 공개적으로 치하했다.
정 회장은 당시 “토요타와 함께 모터스포츠에서도 계속 도전해 더 많은 사람들이 운전을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고, 토요다 회장은 “토요타와 현대차가 손잡고 더 나은 사회와 모빌리티의 미래를 만들고 싶다”고 화답했다. 경쟁 관계에 있는 글로벌 완성차 그룹 수장이 공개 석상에서 이런 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장면이었다.
이후 교류는 유럽으로까지 확장됐다. 올해 6월 열린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레이스 현장에서는 현대차와 토요타가 공동 부스를 운영하며 각사의 WRC 경주차를 함께 전시했다. 현대차의 롤링랩 RM19와 토요타의 GR 야리스 M 콘셉트 등 미드십 고성능 콘셉트카가 같은 공간에 놓였고 28만 명에 달하는 관람객 앞에서 양사의 레이스카가 같은 트랙에서 경쟁했다.
레이싱에서 시작된 관계는 산업 협력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현대차와 토요타는 글로벌 수소차 시장 점유율 1·2위 기업으로 인프라 구축이 관건인 수소 산업에서 협력 가능성을 넓히고 있다. 양사는 BMW와 함께 호주에서 수소 운송 포럼을 공동 설립해 운영중이고 현대차그룹 장재훈 부회장도 “토요타와 수소 표준과 탱크 표준 등 실질적인 협력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업계에서는 아키오 회장의 이 발언을 단순한 스포츠맨십 이상의 메시지로 해석한다. 전동화·자율주행 등 기술 경쟁이 격화되는 국면에서도,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세계에서는 여전히 주행과 현장에서의 승부가 중심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평가다.
아키오 회장이 신차 발표보다 먼저 경쟁사를 꺼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토요타 가주 레이싱이 말하는 ‘더 좋은 차 만들기’는 혼자서 완성되는 개념이 아니라,강한 라이벌이 있을 때 비로소 성립된다는 철학이다.
한편 토요타는 이날 계열사 내에서도 경쟁을 유도하는 전시 테마로 관람객들의 이목을 모았다. 기존 토요타 가주 레이싱을 토요타 레이싱과 가주 레이싱으로 분리 운영하겠다고 발표하는가 하면 다이하츠와는 같은 차종을 다른 테마로 재해석한 튜닝카를 선보이기도 했다. 도쿄오토살롱은 오는 11일까지 열린다.
치바(일본)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