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급발진, '있다' '없다'보다 필요한 것은?

입력 2024년07월16일 08시25분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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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거 없는 주장, 소비자 불안감만 야기

 

 9명의 희생자가 나온 시청역 역주행 참사가 결국 운전자 오조작으로 판단됐다. 관련해 물적 원인을 조사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EDR 기록상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밟은 것으로 확인됐다는 점을 경찰에 통보했다. 이에 따라 경찰도 더 이상 수사할 내용이 없다며 운전자 과실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러자 그간 급발진과 급가속을 두고 벌어진 전문가들의 논란이 오히려 소비자 불안감을 조장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고개를 들고 있다. 한 마디로 ‘제조물 결함 vs 운전자 오조작’에 관해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언급되면서 소비자들의 확증 편향만 키웠다는 얘기다. 

 

 기본적으로 급발진 현상은 여전히 과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정설이다. 현상 재현이 불가능한 탓이다. 그럼에도 일부 전문가 또는 인플루언서들은 최근 시청역 역주행 돌진 사고를 계기로 급발진이 의심된다는 주장을 쏟아냈다. 하지만 최근 급발진을 주장했던 택시 기사의 페달 블랙박스 영상이 공개되자 소비자 여론도 양분되는 중이다. 확인되지 않은 전문가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쪽과 객관적인 사실로만 판단하자는 시각이 팽팽히 맞서는 셈이다.  

 


*자료사진. 특정 사고와 무관함
 

 실제 일부 정비 전문가의 시청역 사고에 대한 설명은 사실 확인부터 논란을 키웠다. 자동차 결함 가능성이 70%라고 주장하며 ▲사고차는 긴급제동장치에 문제가 있어 리콜을 받았고 ▲전자식 브레이크가 탑재됐으며 ▲ECU에 문제가 있으면 브레이크를 밟아도 브레이크등이 점등되지 않는다고 언급했지만 해당 내용은 모두 틀린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자 한 대학의 자동차 전문가는 해당 차에는 긴급제동창지 관련 리콜이 없었으며, 전자식이 아닌 유압식 브레이크가 탑재됐고, ECU와 상관없이 브레이크램프가 작동된다며 공개 반박하기도 했다. 

 

 이후 여론은 물론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은 쪼개졌다. 정비 부문과 실제 자동차 개발자 사이에서 논란이 촉발된 것. 일부 자동차 개발자들은 한 분야에 매우 정통한 전문가도 급발진 현상에 대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인데 정비 전문가가 어떻게 모든 것을 알 수 있느냐며 자동차의 문제 및 결함은 다양한 조건을 가진 경우가 많아 원인을 쉽게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국내 자동차 ECU에 정통한 전문가도 "중요한 것은 무조건 급발진 의심 등으로 운전자들이 불안에 떨 수 있다"는 것이라며 "과학적으로 여전히 검증되지 않은 급발진이 무조건 있다고 주장할 경우 운전자의 확증편향이 생겨 오히려 페달 오조작 현상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순간적으로 페달을 오조작했을 때 급발진이라고 여겨 페달에서 발을 떼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누를 수 있음을 경고하는 셈이다. 그는 "일부 자동차 전문가라 불리는 사람들이 정확한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일단 급발진 의심으로 몰고 가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태도이자 무책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렇듯 급발진은 일본에서도 이미 논란이다. 고령화에 따라 연간 3,000건 이상의 페달 오조작에 따른 급가속 사고가 발생하고 있어서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페달 오조작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만큼 오조작 방지시스템을 2012년부터 도입해오고 있다. 그 결과 2021년 신차 가운데 해당 장치를 탑재한 차는 93% 달했으며, 사고율 역시 10년 전에 비해 50% 가까이 줄었다. 따라서 한국도 비슷한 예방 장치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제기되는 페달 블랙박스 영상 의무화도 생각해볼 문제다. 정부가 안전 장치 의무화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예방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런데 페달 블랙박스는 방지가 아니라 운전자의 과실 여부를 판단할 입증용 역할이다. 페달 블랙박스보다 오조작 방지 장치의 의무화가 먼저라는 얘기다. 

 

 현재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급발진 또는 급가속에 대한 냉정함이다. 더불어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정부가 움직이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시간과 비용이 수반된다. 과거에도 정부가 원인 찾기에 나섰지만 한정된 시간에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결국 실패했다. 그러나 이제는 30년 넘게 이어지는 급발진 또는 급가속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됐다. 지금까지는 운전자가 급발진을 주장하면 실제 현상이 있는 것처럼 알려져 왔지만 이제는 '있다' '없다'가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예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최근 캐스퍼 EV에 급가속 방지장치가 탑재된 것도 같은 이유다. 차라리 해당 장치를 전 차종에 의무화하는 게 보다 현실적이다. 더불어 정부도 결과가 나올 때까지 원인 파악에 나서야 한다. 중요한 것은 비슷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니 말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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