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너십, 양측 모두 절실했던 상황
-일본 정부 차원 자국 산업 보호 목적 시각도
혼다와 닛산이 합병을 공식 발표했다. 내년 6월까지 협상을 마무리하고 2026년 8월 지주사를 설립하며 대표이사 선임 및 임원 인사 의결권의 과반을 혼다가 행사하는 '혼다 주도'의 합병 시나리오도 나왔다. 합병이 완료되면 두 회사는 현대자동차그룹을 제치고 글로벌 3위 자동차 그룹으로 도약하게 된다.
두 회사는 지난 3월 전동화 기술과 소프트웨어 관련 분야에서 포괄적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기술 공유를 통한 경쟁력 강화를 추진해왔다. 이유는 중국 내 부진과 현지 자동차 업체들의 맹추격이다. 올해 들어 11월까지 혼다는 중국 내 판매가 전년 대비 30.7% 감소했으며 닛산도 10.5% 위축됐다.
문제는 경쟁력 확보를 위한 투자 금액이 장기간 필요하고 여력은 크지 않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지난해 혼다의 영업이익은 1조엔(한화 약 9조2,000억원). 같은 기간 지출한 R&D 예산은 8,500억엔(한화 약 8조원)에 달했다. 닛산은 향후 5년간 전동화 분야에만 2조엔(약 20조원) 이상을 투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지속적인 판매 부진과 인력 감축이 이어지고 있다.
양측 모두 파트너가 필요해졌다는 것도 공통분모다. 닛산은 오랜 기간 이어진 르노와의 동맹 관계가 발목을 잡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부품 공동 조달 등을 통한 비용 절감 위주의 수익만 냈을 뿐 과거처럼 독자적인 기술을 내세우지 못했다. 혼다는 제너럴모터스(GM)와의 협업이 전격 취소되며 새로운 파트너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합병을 통해 혼다와 닛산은 연구개발(R&D)과 생산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비용 절감과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주요 시장 중복과 브랜드 통합, 조직 문화 차이를 극복하는 것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주력 시장이 겹치고 비슷한 제품군이 많다는 게 대표적이다. 일본 특유의 기업 문화 차이를 극복하는것도 중요한 숙제라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이번 합병은 단순히 일본 자동차 업계의 내부 협력 차원을 넘어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결정도 일정 부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만의 폭스콘이 르노가 보유한 닛산 지분에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지며 이 합병이 닛산의 독립성을 보호하고 일본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한 혼다의 방어적 개입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폭스콘은 최근 전기차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닛산의 지분 인수를 통해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폭스콘이 닛산의 지분을 확보했다면, 닛산은 일본 자동차 기업으로서의 독립성을 잃고, 새로운 외부 주체의 전략적 통제하에 놓일 가능성이 컸다.
혼다는 이러한 상황을 인지하고 닛산의 백기사 역할을 자처했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혼다의 지주회사 주도권 확보와 닛산의 경영 구조 재편은 단순한 산업 재편이 아닌, 일본 자동차 산업을 외부 기업의 지배에서 방어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일본 정부의 암묵적인 지지나 산업 보호 의지가 작용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렇다보니 일본 정부의 압력이 있었는지에 대한 논란도 일고 있다. 일본 정부는 자동차 산업을 국가 경제의 핵심으로 간주하며 기업 간 협력을 통한 산업 경쟁력 강화를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 직접적인 압력의 증거는 없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가 합병 과정에서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중국 전기차 제조업체들의 부상과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로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 자동차 산업의 입지가 약화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합병이 단순한 두 기업의 협력을 넘어, 침체된 일본 자동차 산업의 위상을 회복할 기회가 될까. 일단 합병의 주도권은 혼다가 쥐었다. 혼다가 새로 설립할 지주회사 사장 선임권과 함께 사내이사 및 사외이사 과반수에 대한 지명권도 갖기로 했다. 미쓰비시까지 합쳐지면 실질적인 연간 생산 규모는 800만대 수준으로 현대차그룹만큼 커진다. 테슬라·BYD 등 신흥 강자가 치고 올라오는 글로벌 경쟁 구도에서 혼다와 닛산의 행보가 과연 어떤 결실을 맺을지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