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즘·美 환경 급변·中 추격 '삼중고'
-신기술·원가절감·공급망 유연화로 승부수
2024년 국내 배터리 업계는 찬바람을 맞았다. 경제 불확실성, 소비자 신뢰 저하 등 다양한 이유로 전기차 수요가 감소하며 캐즘의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이들의 부진은 실적에서도 나타난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4년 4분기 2,25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3년 만에 적자를 봤다. SK온도 3,594억원 손실로 이전 분기 대비 적자로 전환했고 삼성SDI도 같은 기간 2,567억원을 손해봤다고 발표했다.
점유율도 떨어졌다. SNE 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배터리 3사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14%로 전년 동기 대비 10%p 하락했다. 반면 중국 기업들은 74%를 장악하고 있다. 같은 기관에서 발표한 올해 1월 조사에서도 전기차,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하이브리드에 탑재된 배터리 총 사용량은 28GWh로 전년 동기 대비 26.5% 늘어난 반면 국내 배터리 3사의 시장 점유율은 43.8%에서 37.9%로 내려 앉았다.
여기에 더해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며 전기차 보조금 축소 및 내연기관차 규제 완화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당장은 관세를 어떻게 부과할지에 대해서도 저울질이 오가며 업계의 혼란은 더욱 가중되는 상황. 우리나라의 배터리 기업들이 힘을 쏟고 있는 북미 시장에서 성장의 걸림돌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반면 중국 배터리 제조업체들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에서 빠르게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CATL과 BYD는 공격적인 생산 확대 및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활용한 가격 경쟁 전략을 통해 유럽과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특히, CATL은 테슬라를 비롯한 주요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의 협력을 강화하며 한국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이들이 최근 인터배터리 2025에서 선보인 비법은 고성능 및 프리미엄 전략, 다시말해 '기술력'으로 요약된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 등이 하이 니켈 배터리와 전고체 전지 등 차세대 배터리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한편 화재 안전성에 대한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한 안전 설계 기술도 등장하고 있다. 포스코퓨처엠 같은 기초 소재 취급 기업들의 노력도 돋보인다.
SK온은 액침냉각 기술을 선보였다. 액침냉각은 절연성 냉각 플루이드를 배터리팩 내부에 순환시켜 열을 방출하는 시스템이다. 냉매가 배터리 셀과 직접 접촉하기 때문에 공랭식이나 수랭식보다 온도 상승을 더 효율적으로 억제하는 게 특징이다. 독자적인 무선 BMS 기술을 적용해 액침냉각 성능도 극대화할 계획이다. 더욱이 무선 BMS 기술이 상용화되면 배터리 여권 도입과 확산도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무선 칩을 활용하면 각 배터리 셀의 생산 공정, 원산지, 사용 기간, 재활용 가능성 등을 쉽게 조회할 수 있어서다.
삼성SDI는 각형 배터리에 필수적인 '열전파 차단(No TP)' 기술을 선보였다. 이는 특정 셀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셀과 셀 사이에 적용된 안전 소재 등에 의해 다른 셀로 열이 전파되는 것을 물리적으로 막아주는 기술이다. 열전파를 사전에 예측하는 독자적인 기술도 공개해 관심을 모았다.
특히 열 전파 차단 기술과 업계 최고 수준의 에너지 밀도를 구현한 전고체 배터리로 안전성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50A급 초고출력 원통형 배터리를 비롯해 46파이(지름 46㎜) 원통형 배터리의 4개 라인업을 전격 공개하고 안전성과 용량이 향상된 SBB(Samsung Battery Box) 1.5, UPS(무정전 전원장치)용 신규 고출력 배터리 등도 함께 내놨다.
포스코퓨처엠은 성능을 높이고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니켈 함량을 95% 이상으로 높인 ‘Ultra Hi-Ni(울트라 하이니켈) 단결정 양극재’를 개발 중이며 2026년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실리콘 음극재 기술을 통해 전기차 주행거리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궁극적으로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건 구할 수 있는 기초소재로 배터리를 만드는 게 목표다.
원가 절감 측면에서는 천연흑연 음극재 공급망을 최적화해 2027년까지 제조 원가를 30% 추가 절감할 계획이다. 또한, 폐배터리에서 니켈, 코발트, 리튬을 효율적으로 회수하는 리사이클링 기술을 연구하여 원재료 비용 절감을 추진 중이다. 중국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LFP의 대안으로 LMR(리튬망간리치) 양극재를 개발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행보다.
인프라와 관련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현지 생산시설 확장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 LG에너지솔루션은 이미 미국에 갖춰진 생산 시설을 기반으로 미국 새 행정부의 기조에 적극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삼성SDI는 스텔란티스와 설립한 합작 배터리 공장 가동을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는 평가다.
국내 한 배터리 전문가는 "한국 배터리 산업은 현재 전기차 수요 둔화, 미국 정책 변화, 중국 기업들의 공세 등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며 "그럼에도 차세대 배터리 기술 개발, 원가 절감, 글로벌 공급망 확장 등의 전략적 대응을 통해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시장 내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올 하반기 부터는 여건이 점차 나아질 것으로 전망하는 상황. 이들의 행보에 귀추가 쏠리는 이유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