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은 이름만 들어도 낭만적이다. 봄에 떠나는 춘천은 더 그렇다. 가족, 연인과 함께 청량리역에서 경춘선 기차를 타고 떠나는 춘천 봄여행은 겨우내 움츠렸던 마음을 들뜨게 한다. 기차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세상 시름을 잊게 한다. 은빛 북한강이 따사롭게 찰랑이고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줄을 지어 지나간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소설가 김유정의 고향을 찾아 춘천 미식기행을 떠날 때다.
춘천 하면 누구나 막국수와 닭갈비를 떠올린다. 춘천은 닭을 키우는 농가가 많고 강원도가 메밀농사를 많이 짓기에 지역 특성상 두 음식이 유명해진 것은 당연하다. 차를 타고 춘천 근방만 접근해도 벌써 막국수와 닭갈비 간판이 쉴 새 없이 나타난다. 그 많은 막국수와 닭갈비 가게가 각자의 단골 손님이 있고 장사가 된다고 하니 신기할 따름이다. 춘천에 오면 닭갈비와 막국수를 먹지 않고는 배길 장사가 없을 것 같다. 유혹을 물리치고 꿋꿋하게 찾아 간 곳은 춘천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닭갈비 마을 옆 식당 '초가'다. 김치찌개로 유명한 '초가'를 찾은 것은 춘천 토박이의 거창한 자랑 때문이었다. '초가'의 김치찌개가 대한민국 최고라고 했다. 김치찌개를 두고 최고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데, 춘천에 오면 꼭 먹어 보라고 권했다.
우리나라에서 김치찌개는 맛을 논할 수 없는 존재다. 인생 음식이고 국민음식이다. 돼지고기를 넣기도 하고, 참치를 넣기도 하고, 꽁치를 넣기도 하고, 묵은지만 넣고 끓이기도 하는 김치찌개는 백인백색이다. 그런 김치찌개에서 최고를 뽑는 것은 각자의 기호에 맡겨야 한다. 여기까지가 '초가'의 뭉텅찌개를 먹어 보기 전까지의 생각이었다.
아침 일찍 서둘렀던 덕분에 점심 시간이 한참 남은 시간에 도착했다. 오전 10시30분에 문을 여는 '초가'는 이미 만원이다. 손님들이 제일 많이 주문하는 음식은 뭉텅찌개. 두툼한 삼겹살 돼지고기가 뭉텅하게 들어가 '뭉텅찌개'라고 부른다. 여기에 묵은지가 통째로 들어가 있다. 흔한 김치찌개라 부르지 않고 뭉텅찌개라고 명명한 이유를 알 듯하다. 가스불을 켜놓고 기다리다 보면 끓기 직전에 사장님이 고기와 묵은지를 고르게 잘라 준다. 그런 다음 찌개가 끓기를 또 기다린다. 고기를 다 익혀 내오기에 고기를 자른 다음 한소끔 끓으면 먹기 시작한다. 국물부터 한 입 떠 먹어 보면 맑고 개운한데 깊이가 있다. 맛있는 음식은 첫 술에 식욕이 생기게 만든다. 뭉텅찌개의 국물 한 모금이 입안에서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순간 어디선가 먹고 싶다는 본능적인 욕구가 샘솟는다. 육수를 더 넣을 정도로 처음에는 국물을 연거푸 먹게 된다.
보글보글 끓는 찌개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걸쭉해진다. 이 때부터 이 집의 찌개는 '떠 먹는다' 보다 '건져 먹는다'로 바뀐다. 실하게 씹히는 뭉텅고기를 묵은지에 싸먹고 그냥도 먹어 보는데 그 맛은 부드러우면서 냄새 없는 삼겹살 특유의 고소함이 느껴진다. 고기 자체가 신선하고 쫄깃하다. 물에 빠진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사람도 '초가'의 김치찌개에 들어 있는 삼겹살은 환장할 것이다.
고기를 어느 정도 먹은 다음 육수를 조금 더 넣고 라면을 넣는다. 여기서부터 찌개는 전골로 탈바꿈한다. 개운한 찌개에서 걸쭉한 전골로 바뀌는 것. 라면을 넣는 순서가 중요하다. 빠르게 면을 건져 먹은 다음 공기밥을 그대로 냄비에 넣어 국밥으로 먹어야 마무리가 깔끔하다. 한가지 음식에서 찌개와 전골과 국밥을 동시에 먹는 느낌이다. 김치찌개의 맛은 김치가 좌우할 것이다. '초가'의 묵은지는 텁텁하지 않은데 씹는 맛이 있고, 부드러우면서 그렇게 신맛이 나지 않는다. 찌개를 위한 가장 적절한 상태를 의도적으로 만든 것 같았다.
김치찌개를 먹으러 국밥기행을 떠날 일은 없을 줄 알았다. 그곳이 춘천이어서 시작했던 미식기행은 '초가'라는 이름을 새기며 돌아왔다. 한 두 겨울을 보낸 묵은지를 넣는 김치찌개는 봄에 먹어야 더 어울린다.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던 김치가 돼지고기를 만나 특유의 구수함과 깊은 신맛을 낼 때 입 속의 미식세포가 함께 깨어나기 때문이다. 벚꽃이 막 피기 시작한 새봄이다. 각자의 추억과 이야기가 있는 인생 음식을 찾아 가볍게 여행을 다녀오면 좋겠다. 그래야 또 일상을 살아갈 새 힘이 생기지 않을까!
글/사진 양승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