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 고령 운전자, 우리 사회의 '조정 능력'을 묻다

입력 2025년07월24일 09시00분 박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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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령자 면허 반납, 과연 능사인가
 -제도와 기술 통해 사회 문제 해결해야

 

 19세기, 세계 각지에서 철도가 급속도로 확장되며 교통 혁명이 일어났다. 사람과 물자의 이동 속도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라졌고 산업과 도시의 지도가 바뀌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고통도 있었다. 철로가 농장을 가로지르며 마을과 밭이 단절됐고 시장으로, 학교로 나가던 길이 가로막히며 동선을 잃었다. 미 대륙에서는 늘 그곳에 있었던 아메리카 들소들이 기차의 통행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만으로 수없이 학살당하기도 했다. 기술은 앞으로 나아갔지만 삶은 그 위에 갇힌 사례다. 

 

 물론 그대로 있지만은 않았다. 우리 사회는 퇴출 대신 조정을 택했다. 철로 위아래로 건널목과 지하도를 만들고, 철도안전법이 만들어졌으며 철로 인근 주민들에게는 보상과 재배치 방안을 제공했다. 동물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생태통로와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그리고 2025년 현재 우리는 또 하나의 철로 앞에 서 있다. 고령자 교통사고 문제다. 한국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가해자인 사고는 2020년 3만1,072건에서 2023년 4만2,369건으로 약 36%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교통사고는 감소했지만 고령 운전자 사고 비중은 21.6%로 뛰어올라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부는 자진 면허 반납을 유도하고 있지만 실제 반납률은 고작 2%대에 머물고 있는 상황. 이유는 명확하다. 고령자에게도 이동권은 평등하게 적용되며 운전이 생계 그 자체인 경우도 적지 않아서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전체 운수종사자 중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은 23.6%에 달한다. 버스는 전체 운전자(13만6,478명) 중 2만3,372명으로 17.2% 수준. 전체 개인택시(16만4,334명) 운전자의 51.4%인 8만4,511명이 고령 운전자다. 면허를 반납하라는 말은 이들에게 직업을 포기하라는 말과 다름없는 셈이다.

 

 이 상황은 20세기 중반, 복지국가가 처음 형성되던 시기를 떠올리게 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노인들의 빈곤 문제가 사회적 위기로 떠올랐다. 그전까지 노년의 삶은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영역이었고 일하지 못하면 가난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회는 판단했다. 노인의 삶을 시장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고. 그렇게 북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노인 연금제도가 도입됐고 고령자에 대한 공공책임이 제도화되기 시작했다.

 

 고령 운전자 문제도 마찬가지다. 일각에서 면허 자진 반납 제도를 말하지만 이는 절대 능사가 아니다. 사고가 많다고 해서 면허를 박탈할 것이 아니라 사회가 어떤 조정 능력을 발휘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위험과 통계를 이유로 이들을 도로에서 몰아내지 말고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급발진을 막는 페달 오조작 방지장치, 전방 충돌방지 및 차로이탈 경고 등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은 이미 상용화돼 있다. 일본은 고령자가 이런 장치를 장착한 차를 구매할 경우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고 이는 이동권과 생계권을 지키면서도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절충안이 된다.

 

 돌이켜보면 우리 사회는 이미 여러 차례 교통안전에 대한 사회적 의식을 성숙시켜 온 경험도 있다. 민식이법 제정 이후 어린이 보호구역에 대한 경각심은 눈에 띄게 높아졌고, 자동차용 블랙박스의 확산은 교통사고 분쟁의 감정적 충돌을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제도와 기술이 만나면 사회는 더 안전하고 윤택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고령 운전자 문제에도 같은 상식을 적용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단순히 문제가 있으니 배제해야 한다는 논리보다 위험을 줄일 수 있는 기술과 제도가 있다면 함께 쓰자는 방식이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다. 기술이 앞설수록 사회는 더 민감하고 유연해야 한다. 철도가 논밭을 가로질렀을 때 사회가 건널목을 만들었듯 오늘날의 우리는 고령자의 이동권을 보호하기 위해 면허를 뺏지 말고 제도적 건널목과 기술적 방호벽을 촘촘하게 세워야 한다. 

 

 고령자의 운전은 교통안전의 문제가 아니라 노후의 존엄과 공동체의 책임에 관한 문제다. 기술은 그들을 내쫓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더 오래, 더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발전해온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결정적으로 우리는 모두 언젠가 고령 운전자가 된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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