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 과잉의 시대, 비움의 미학 실천하는 볼보 'EX30'

입력 2025년08월07일 09시30분 박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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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워낸 자리에서 시작되는 감각
 -조용한 움직임과 정확한 반응 인상적

 

 볼보 EX30의 운전석에 처음 앉았을 때 마치 수도원 안쪽 독방에 들어와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불을 켜도 환하지 않고, 바람 소리 조차 고요하며 눈 돌릴 곳 조차 적은 간결한 구조 때문에. 너무 조용해서 당황스럽고 너무 정제되어 어딘가 비인간적인 것 같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과잉과 탐닉, 도파민의 시대. EX30은 하나씩 덜어내는 방식으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이냐고. 

 


 

 ▲디자인&상품성
 차를 마주보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무언가가 없다는 감각이다. 과장된 그릴도, 날카로운 눈매도 없다. 대신 아이언 마크가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고 그 아래에는 광택 없는 검정 패널이 번뜩이지 않는 방식으로 조형을 완성한다. 전기차로서 냉각이 덜 필요한 구조를 그대로 드러낸 듯한, 기능에 충실한 디자인이다. 

 

 램프는 익숙한 토르의 망치 형태지만 픽셀 그래픽을 통해 디지털적인 깊이가 더해졌다. 형태는 정제돼 있고 조형은 위압감이 아니라 침묵의 힘을 말해준다. 범퍼 하단에는 최소한의 에어덕트만이 자리하며 모든 선과 면은 이 차가 표현하고 싶은 절제의 미학에 충실하다.

 




 

 측면으로 돌아서면  작지만 단단하다는 인상을 강하게 남긴다. 전체적으로 마른 근육처럼 팽팽하게 당겨진 차체는 복잡한 캐릭터 라인 없이 정돈된 볼륨으로 정리돼 있다. 휠하우스를 따라 이어지는 펜더는 강하게 부풀어 있지만 그 조차 기교로 보이지 않는다. 루프는 투톤으로 처리됐고 프레임리스 사이드미러와 유광블랙 몰딩이 더해지며 군더더기 없는 선의 흐름을 완성한다. 모든 디테일이 장식이 아니라 기능처럼 배치됐고 그 기능마저도 조용히 작동하도록 배려됐다.

 

 후면은 더욱 절제돼 있다. 볼보 SUV 라인업 특유의 세로형 테일램프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번에는 두 층으로 나뉜 구조로 재해석됐다. 위쪽 램프는 차체와 통합된 듯한 매끈한 디자인이고 아래쪽 램프는 더 깊은 자리에서 빛을 비춘다. 전면과 마찬가지로 어떤 장식도 없고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중앙에는 조용히 박힌 볼보 레터링이 유광 블랙 패널 위에서 흐릿하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후방 센서와 카메라는 범퍼 아래쪽으로 최대한 내려가 있어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이 차는 수도원이 그렇듯 화려함으로 신성함을 증명하지 않고 오히려 침묵과 반복, 그리고 간결함으로 의미를 쌓는다. EX30은 그런 방식으로 차를 디자인했다. 보여주기 위한 차가 아니라 비워내기 위한 조형. 그 점에서 이 차는 첫눈에 마음을 빼앗기기보다 오래 볼수록 다시 돌아보게 되는 종류의 차다.

 


 

 실내로 들어선 순간 침묵은 더욱 명확한 형태로 다가온다. 안쪽은 전통적인 자동차의 구성이 아니다. 계기판이 없다. 기어 레버도 없다. 도어에는 스위치조차 없다. 손이 어디에 닿아야 할지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그러다 이내 깨닫는다. EX30은 운전자에게 익숙함을 제공하려는 차가 아니라 익숙함을 해체하는 차라는 것을.

 

 대시보드는 광활하다. 비워낸 공간이야말로 이 차의 존재 방식이라는 것을 선명히 드러낸다. 그 위를 가로지르는 오디오는 패널 아래에 수평으로 놓인 사운드 바 하나로 통합됐고, 모든 정보와 조작은 중앙의 세로형 디스플레이 하나에 담겼다. EX30은 직관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새로운 규칙을 제공한다. 마치 수도원의 일과표처럼 단순하고 반복적인 조작 체계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 질서를 느끼게 된다.

 

 한 장의 화면은 단순한 장치 그 이상이다. 티맵모빌리티와 공동 개발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내장된 티맵의 경로 안내는 빠르고 정확하며 검색 반응 속도 역시 스마트폰 못지않다. 내비게이션 사용 중에도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며 경로 변경이나 주변 탐색도 매끄럽다. 화면 구성은 단순하고 아이콘은 직관적이어서 메뉴를 파고들지 않고도 대부분의 기능을 빠르게 쓸 수 있다.

 



 

 음성 인식 기능은 누구 오토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말만 하면 공조, 라디오, 전화, 목적지 설정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특히 한국어 인식률이 96% 이상으로, 실제 사용에서도 오차 없이 명령을 이해하고 반응한다. 일반적인 명령어뿐 아니라 비교적 자연어에 가까운 문장도 잘 받아들인다. 

 

 공간의 마감은 이질감 없이 따뜻하다. 가죽 대신 리사이클 섬유와 바이오 소재가 쓰였고 색상은 차분한 톤으로 고르게 배분돼 있다. 시트의 감촉은 부드럽고 버튼이 없기에 조작을 위한 움직임마저 줄어든다. 조명은 스칸디나비아의 바다와 숲, 이끼에서 가져온 다섯 가지 컬러를 은은하게 퍼뜨리며 실내 전체를 물들인다. 차가운 디지털 장치와 따뜻한 천연 소재가 겹쳐져 사람의 체온을 거스르지 않는 방식으로 고요함을 만들어낸다. 

 

 글러브박스는 조수석 앞이 아니라 중앙에 있다. 창문 스위치도 도어가 아닌 센터터널에 모여 있다. 전통적인 자동차의 문법에서 벗어난 이 모든 배치는 처음엔 어색하지만 곧 명확해진다. 필요 없는 건 없애고 필요한 건 모았다. 이 차는 디자인이 아니라 신념으로 설계됐다.


 뒷좌석도 체급을 고려하면 충분히 실용적이다. 무릎 공간은 제한적이지만, 머리 위는 여유롭고, 광활한 글라스 루프 덕분에 갑갑함은 없다. 독립 공조는 없지만 중앙 콘솔에서 이어지는 수납과 충전 포트로 필요는 채워진다. 트렁크 공간은 기본 상태에서 넉넉하진 않지만, 시트를 접으면 훌륭한 확장성을 제공한다. 보닛 아래에도 추가 수납 공간이 있어 분산 수납이 가능하다. 

 


 

 ▲성능
 EX30은 싱글 모터로 뒷바퀴를 굴린다. 최고출력은 272마력, 최대토크 35.0㎏·m으로 수치만 보면 꽤 날렵한 성능이다. 하지만 EX30은 스스로 힘을 드러내는 데 인색하다. 강함을 드러내는 대신 묵직한 차분함으로 자신의 리듬을 고수한다. 오히려 그런 침착함이 체감 성능을 더욱 빠르게 만든다. 속도를 내면 낼수록 날카로워지는 차가 아니라 더 고요하고 단정해지는 쪽으로 나아간다.

 

 회생제동은 두 가지 모드만 제공된다. 강한 쪽은 거의 원페달 드라이빙에 가까운 제동감을 주고 약한 쪽은 관성 주행에 가까울 만큼 자연스럽다. 세세하게 조정할 수 없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을 수 있지만 그조차도 고민의 영역 밖으로 밀어낸다. 고민 없이 고른 리듬으로 속도를 조절하고 거칠게 흔들리지 않고, 앞뒤 무게를 고르게 나누며 노면을 다스린다. 

 

 체급을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로 자세가 안정적이다. 하체는 단단한 편이지만 결코 거칠지 않고 진동의 여운도 짧고 간결하다. 롤도 적고, 바운스도 드물다. 조향은 빠르지도, 무겁지도 않다. 운전자의 의도를 차분하게 따라가며 도로 위에서 몸을 튕기지 않고 지면을 붙들고 선다. 

 


 

 고속에서의 안정감도 인상적이다. 시속 100㎞를 넘나들 때조차 실내의 고요함은 크게 흐트러지지 않고 유리창 너머의 공기만 빠르게 흘러간다. 속도를 올려도 흥분하지 않고 차체가 흔들리지 않으며 방향을 틀어도 차분하게 자세를 복구한다. 운전자를 자극하지 않고 그 대신 믿게 만든다.

 

 운전자의 시선을 감지하는 IR 센서는 졸음이나 주의 산만을 경고하고 문을 열기 전 다가오는 보행자나 자전거를 감지해 사고를 미연에 막는다. 주행 보조 시스템은 정밀하게 작동하며 자동 주차 기능은 여유 있는 공간 감각으로 운전자를 돕는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이 차가 어떤 위급 상황에서도 차분함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든 시스템은 예민하지만 조용히 작동하며 운전자가 놀라지 않도록 배려되어 있다. 

 

 충전 속도는 빠른 편이다. 급속 충전 기준으로 30분 이내에 10~80%까지 충전할 수 있고 실주행에서도 공인된 주행 가능 거리보다 더 멀리 가는 경우가 많다. 환경부 기준 복합 351㎞, 고온에서 351㎞, 저온에서도 302㎞를 확보했다. 

 


 

 ▲총평
 EX30은 말이 없는 차다. 묻지 않으면 설명하지 않고 요구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과시하지 않고, 먼저 다가오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안에 깃든 조형, 감각, 기술은 원할 때마다 정확하게 응답한다. 수도원의 고요함이 신앙심의 표현이듯 이 차의 침묵은 기술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됐다. 사람을 지배하려 하지 않고 대신 곁에 조용히 머무르며 함께 시간을 만들어간다. 이만큼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볼보 EX30의 가격은 4,755~5,183만원이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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