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내연기관 강력 저항 부딪친 한국

입력 2025년10월07일 16시50분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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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동화 전환, 속도 놓고 갈등 
 

 “전동화 전환 속도를 높여 탄소 중립에 도달하겠다.” 그러나 “너무 빠르면 자동차 공급망이 붕괴된다.” 둘의 입장 차이가 팽팽하다. 포문은 김성환 기후환경에너지부 장관이 열었다. 김 장관은 최근 “중국이 전기차의 강자로 부상했다”며 “지금이라도 빠르게 쫓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간 국내에 판매되는 신차 가운데 30% 정도는 전기차가 돼야 한다는 입장도 덧붙였다. 참고로 지난해 국내에 판매된 신차 162만대 기준으로 30%는 48만대 정도다. 

 



 

 그러자 자동차 관련 업계가 일제히 우려를 쏟아냈다. 2035년 탄소 중립 달성은 모든 자동차를 무공해차로 판매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전기차 보급 목표는 내연기관 중심 산업생태계에 근본적 변화를 주는 이슈인 만큼 국내 자동차산업 경쟁력의 지속가능성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한 마디로 지나치게 전환 속도를 높이지 말라는 뜻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미 BEV를 적극 판매 중인 완성차기업도 전환 속도 향상에 반대한다는 사실이다. 한국모빌리티산업협회 강남훈 회장은 “과도한 보급 목표는 BEV 판매 의무제 등의 규제로 연결돼 기업 부담을 가중시키고, 국내 시장은 오히려 수입산 전기차의 시장 장악력만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부품 기업도 가세했다. 이들은 전기차 투자 여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향후 10년 내에 부품생태계를 100% 전환하는 것은 생존의 위협이라는 입장을 추가했다. 친환경차 부품 생산 기업이 15~18%에 불과한 상황에서 빠른 전환은 공급망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음을 걱정한다. 

 

 내연기관의 강력한 저항은 비단 한국만의 사례가 아니다. 미국은 전기차 보조금 폐지와 함께 무공해차 판매 의무 규제, 그리고 평균연비(CAFE) 미충족 과징금도 삭제해 제조사가 배출가스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유럽연합도 2035년 내연기관 판매금지 재검토는 물론 영국을 중심으로 무공해차 의무판매제 완화 개정안을 발표했다. 독일은 2035년 100% 전동화 전환을 불가능으로 보고 HEV, PHEV, 탄소중립연료, FCV 등 다양한 기술 대안을 통해 실용적 접근법을 제안했다. 

 

 제조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볼보와 스텔란티스는 2030년 무공해차 전환계획을 철회했고, 벤츠, BMW, 토요타, 혼다, GM, Ford 등도 전기차 판매 목표는 줄이되 HEV 등의 동력원을 늘리기로 했다. 그러면서 무공해차 확대를 위해선 제품 비용 절감을 위한 기술개발 지원은 물론 소비자 수용성 확대를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BEV 등이 보급되려면 내연기관의 가격을 뛰어넘어야 하는데 방법은 R&D 지원이 유일하다는 뜻이다.
 


 이런 이유로 여러 나라와 제조사들은 점진적 전환을 추진한다. BEV에 오롯이 매진하는 게 아니라 중간 과정인 HEV, PHEV, EREV 등을 거치려 한다. 전동화 전환과정에서 CO2 감축과 부품생태계 전환에 도움이 되는 동력원 역할을 재평가하고 탄소중립 연료를 사용한 내연기관차도 내놔 기술 중립적이고 실용적 접근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따라서 한국도 급진적이 아닌 점진적 전환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정부가 전환 속도를 높이려는 이유는 수송 부문의 탄소 배출 감축이 매우 부진하기 때문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2018년 수송부문 연간 탄소 배출량은 9,880만톤었는데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2024년 배출량은 9,750만톤에 달했다. 6년 동안 불과 1.3% 감축에 그친 셈이다. 2030년까지 BEV 및 FCV 보급 목표도 450만대였지만 현재까지 85만대 수준에 머무른다. 결국 기후환경에너지부 김성환 장관은 지난달 24일 열린 온실가스 감축 공개토론회에서 2035년 수송부문 배출 목표를 4,430만톤으로 설정해 지금보다 55% 줄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면 ‘모든 운송 수단의 전동화’가 이뤄져야 하는데 지금보다 전환 속도가 두 배 이상 빨라져야 달성 가능하다. 

 

 정부의 급진 전환과 자동차업계의 점진 전환 요구는 각각의 입장 차이에서 비롯됐다. 정부는 탄소중립 달성이 목표인 반면 자동차업계는 지속 생존이 당면 과제다. 그런데 둘의 입장에서 간과되는 부분이 바로 소비자다. 정부가 어떻게 보급할 것인지 계획을 세워도 최종 소비자가 구매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마찬가지로 제조사가 BEV를 연이어 출시해도 소비자가 안 사면 처분할 곳이 없다. 구매자는 없는데 전환 속도를 놓고 정부와 기업이 서로 목소리를 높이는 형국이다. 

 

 기본적으로 소비자에게 BEV는 내연기관의 대체 수단일 뿐이다. 따라서 가격, 이용 편의성, 운행을 통한 혜택이 우선 고려 대상이다. 별다른 이점이 없다면 구매하지 않는다. 보조금이 가격 장점을 만들고 충전 인프라 확대가 이용 편의성이라면 운행 과정에서 확보되는 탄소 배출권의 재산권 인정 등은 추가 혜택이다. 하지만 보조금은 한정돼 있고 인프라 확충도 쉽지 않다. 특히 민간 충전 사업자는 적자에 시달린다. 그리고 배출권이라는 재산은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전환 속도 논쟁보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이 BEV 또는 FCV의 장점을 어떻게 수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일이다. 수용성이 높아지면 전환 속도는 당연히 빨라지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정부와 기업 간 수송 부문의 탄소감축을 위한 고민의 우선 순위는 바로 소비자가 돼야 한다.  

 

권용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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