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로 더 완벽해진 정숙성과 편안함
-하이브리드, 효율 높이고 주행 균형감까지 개선
-전동화 기술, 렉서스 본연의 가치 극대화해
삼국지에서 유비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덕망을 갖고 있었지만 천하를 다투기에는 무언가 부족했다. 그리고 제갈량은 그런 유비에게 전략과 방향을 제시했다. 없던 능력을 만들어줬다기보단 이미 갖고 있던 장점을 더욱 강력한 경쟁력으로 바꿔 천하삼분지계를 실현했다.
완전변경을 거친 8세대 렉서스 ES를 시승하면서 이 일화가 떠올랐다. 렉서스는 오래 전 부터 정숙성과 편안한 승차감, 안정적인 주행 감각을 강점으로 내세워왔다. 이 분야에서만큼은 이미 충분한 경쟁력을 갖춘 브랜드였다. 그런데 ES는 여기에 새로운 무기를 더했다. 전기차는 렉서스가 추구해온 가치를 더 선명하게 드러냈고 하이브리드 사륜구동은 기존의 안정감에 한층 정교한 움직임릉 보탰다. 제갈량을 얻은 유비처럼, 렉서스도 자신들이 잘하는 일을 더욱 잘할 수 있는 수단을 손에 넣은 모습이다.
▲디자인&상품성
신형 ES는 이전보다 한층 대담한 모습이다. 렉서스 특유의 스핀들 그릴은 차체 전체로 확장한 스핀들 보디로 발전했다. 전면부의 날렵한 램프와 입체적인 차체 구성은 이전보다 미래지향적인 인상을 만든다.
차체도 커졌다. 전장 5,140㎜, 전폭 1,920㎜, 전고 1,560㎜에 휠베이스는 2,950㎜다. 이전 세대보다 길이는 165㎜, 너비는 55㎜, 휠베이스는 80㎜ 늘었다. 역사의 뒤안길로 떠난 LS와 GS의 빈자리를 채우기라도 하겠다는 듯 이제는 준대형 세단이라는 분류보다 대형 세단에 가까운 존재감을 갖췄다.
디자인 곳곳에는 공기역학을 고려한 흔적도 있다. 차체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도어 핸들과 매끄럽게 다듬은 측면, 차체 하부의 공기 흐름을 정돈하는 장치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전기차에는 바닥을 평탄하게 만드는 풀 언더 커버를 적용했다. 단순히 보기 좋은 디자인을 넘어 효율과 주행 안정성까지 고려한 구성이다.
실내는 한층 간결하다. 운전석에는 12.3인치 계기판과 14인치 중앙 디스플레이를 배치했다. 스티어링 휠의 지름을 줄이고 버튼 배치를 정돈해 조작 편의성도 개선했다. 시야를 가리는 요소를 최소화하고 수평적인 구성을 강조한 점도 눈에 띈다.
가장 흥미로운 장비는 '리스폰시브 히든 스위치'다. 평소에는 실내 장식과 하나처럼 보이지만 손을 가까이 가져가면 기능 아이콘이 나타난다. 필요한 순간에만 기능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렉서스가 강조해 온 '오모테나시', 즉 상대방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환대의 철학을 기술적으로 해석한 사례다. 다만 실제 조작 과정에서는 기존 물리 버튼에 익숙한 운전자라면 적응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실내 분위기를 꾸미는 기능도 다양하다. 멀티 컬러 일루미네이션은 14가지 기본 색상과 50가지 사용자 설정 색상, 6가지 다이내믹 테마를 제공한다. ES 전기차 제품군에서 럭셔리 트림 이상에는 대나무를 모티브로 한 도어 장식 '뱀부 레이어링'도 적용한다. 과도하게 화려한 조명보다는 소재의 질감과 공간감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편의장비도 충실하다. 렉서스 커넥트를 통해 실시간 교통정보를 활용하는 내비게이션과 원격 공조 및 차 상태 확인 기능을 제공한다. 특히 국내에서는 LG유플러스와 협업해 서비스를 구성했고 네이버 클로바 기반 음성인식도 지원한다. 애플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는 무선 연결이 가능하다.
럭셔리 등급에는 17개 스피커를 갖춘 마크 레빈슨 오디오 시스템이 적용된다. 소프트 클로저 도어와 자동 주차 기능, 파노라믹 뷰 모니터도 등급에 따라 제공한다. 전기차 럭셔리 이상에는 노면 상황에 따라 감쇠력을 조절하는 전자제어 서스펜션과 1만6,384개 픽셀로 빛을 제어하는 고해상도 어댑티브 하이빔도 마련했다.
뒷좌석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늘어난 휠베이스만큼 다리 공간에 여유가 생겼고 시트와 내장재를 얇게 설계해 공간 활용도를 높였다. 특히 ES350e VIP에는 뒷좌석 리클라이닝과 오토만, 마사지 및 통풍 시트, 별도의 공조 제어장치까지 적용한다. 운전하는 사람뿐 아니라 뒷좌석에 앉는 사람의 편안함도 중시하는 ES의 성격을 보여준다.
▲성능
이번 시승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차는 ES500e였다. 전기차라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전기차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고 운전할 수 있었다는 점이 특별했다.
전기차는 강력한 초기 토크와 즉각적인 가속 반응을 강조한다. 가속 페달을 조금만 깊게 밟아도 차체가 튀어나가듯 반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ES500e는 달랐다. 힘을 전달하는 과정이 부드럽고 자연스러웠다. 운전자가 원하는 만큼 가속하고 원하는 만큼 속도를 줄이는 과정에 과장된 움직임이 없었다. 전기차라는 수식어를 떼어놓고 보더라도 그냥 렉서스 그 자체였다.
오히려 기존 하이브리드보다 더 렉서스답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엔진의 개입이 사라지면서 정숙성은 더욱 좋아졌고 동력을 전달하는 과정도 한층 매끄러워졌다. 렉서스가 오랫동안 추구해 온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이동이라는 가치에 전기 구동계가 정확히 들어맞은 셈이다.
회생제동 역시 이 같은 성격을 잘 보여준다. 감속이 시작되는 과정에서 갑작스럽게 차체가 붙잡히거나 울컥거리는 느낌이 적다. 운전자가 제동 반응을 예상하고 준비할 수 있을 만큼 자연스럽게 감속이 이어진다.
회생제동은 네 단계로 조절할 수 있고 완전히 해제하는 것도 가능하다. 특히 회생제동을 끈 상태에서의 타력 주행이 인상적이다.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면 차는 불필요하게 속도를 줄이려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미끄러져 나간다. 마치 잘 조율된 내연기관 세단을 운전하는 듯한 감각이다.
주행모드에서도 렉서스다운 해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에코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에너지 소비를 억제하는 레인지 모드에서는 가속 페달의 반응이 눈에 띄게 둔해진다. 공조장치까지 제어하면서 주행거리를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데 이 레인지 모드가 의외로 매력적이다. 전기차 특유의 즉각적인 토크 반응이 줄어들고, 가속은 한층 부드럽고 점진적으로 이어진다. 효율을 위한 설정이지만 결과적으로는 편안한 주행을 원하는 운전자에게 또 하나의 선택지가 된다. 전기차 특유의 급격한 가속 반응이 부담스럽다면 오히려 가장 마음에 드는 모드가 될 수도 있겠다.
성능 자체도 부족하지 않다. ES500e는 앞뒤에 각각 구동 모터를 배치해 합산 최고출력 347마력을 발휘한다. 여기에 전후 구동력을 실시간으로 배분하는 다이렉트4 사륜구동 시스템을 결합했다.
덕분에 편안함을 추구하면서도 코너에서는 예상보다 민첩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바닥에 낮게 배치한 배터리는 무게중심을 낮추는 데 유리하고, 앞뒤 바퀴에 구동력을 적절하게 나눠주는 시스템은 차체의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을 준다. 렉서스는 원래 안정적인 차를 잘 만들었다. 그런데 전기차의 구조적 장점이 더해지면서 그 안정감에 운전의 즐거움까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ES350h AWD도 다른 의미에서 놀라웠다. 무엇보다 효율이 인상적이었다.
신형 ES는 차체가 커졌고,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성능도 강화했다. 여기에 사륜구동 시스템까지 더했다. 일반적으로 차체가 커지고 무게가 늘어나면 연료 효율에는 불리하게 작용한다. 그런데 신형 ES는 오히려 효율을 개선했다.
ES350h의 연료 효율은 AWD 기준 18.3㎞/ℓ입니다. 전륜구동은 19.4㎞/ℓ. 그런데 실제 시승에서는 ℓ당 21㎞ 수준까지 올라갔다. 주행 환경과 운전 습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수치지만, 커진 차체와 사륜구동 시스템을 고려하면 상당히 인상적인 결과다. 대체 어떤 마법을 부린 것일까.
비결은 6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에 있다. 렉서스는 2.5ℓ 가솔린 엔진에 구동 모터와 변속기 구성 요소, 전력 제어 장치를 통합한 E-액슬을 결합했다. 구동계의 크기와 무게를 줄이고 전력 손실을 최소화하는 한편, 배터리 출력과 모터 제어도 개선했다.
단순히 엔진 효율만 높인 것이 아니다. 전기모터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엔진이 불필요하게 작동하는 상황을 줄여 전체 시스템의 효율을 끌어올렸다. 출력과 효율이라는 상반된 목표를 동시에 추구한 결과다.
주행 감각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느껴진다. 엔진과 모터가 동력을 주고받는 과정은 여전히 자연스럽고, 가속 페달을 깊게 밟지 않는 일상적인 주행에서는 차분한 움직임이 돋보인다. 렉서스 하이브리드 특유의 부드러운 감각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였다.
여기에 사륜구동이 더해지면서 핸들링도 한층 좋아졌다. 기존 전륜구동 ES도 균형이 좋은 차였다. 운전자를 긴장시키지 않는 안정적인 움직임과 편안한 승차감이 강점이었다. 신형 ES350h AWD는 여기에 뒷바퀴의 구동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더했다.
렉서스의 E-Four 시스템은 노면과 주행 상황에 따라 뒷바퀴에 필요한 만큼 구동력을 전달한다. 특히 코너에서 차가 바깥으로 밀리는 언더스티어가 발생하면 후륜 구동력을 높이고 반대로 안쪽으로 말려드는 오버스티어 상황에서는 이를 줄여 차체의 움직임을 안정시킨다.
실제 운전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코너를 돌아 나가는 과정이 더욱 자연스럽고, 운전자가 의도한 방향으로 차체가 움직인다는 믿음이 커졌다. 날카로운 스포츠 세단처럼 운전자를 자극하는 성격은 아니다. 대신 차의 움직임을 더욱 정확하게 다듬어 운전자가 편안하게 속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총평
두 차 모두 접근법은 다르지만 향하는 방향은 같다. ES500e는 전기차의 형태로 렉서스의 정숙성과 편안함을 극대화했고 ES350h AWD는 기존의 안정적인 주행에 뛰어난 균형 감각을 더했다. 정숙성과 편안함, 안정적인 주행이라는 자신들만의 강점을 전동화 기술로 더욱 발전시켰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 모든 변화가 자연스럽다는 점이다. 새로운 기술을 과시하기보다 기존의 장점을 발전시키는 데 집중했다. 더 조용하고, 더 편안하며, 운전하는 즐거움까지 커졌다.
유비에게 제갈량이 그랬듯, 전동화와 사륜구동은 렉서스가 이미 갖고 있던 경쟁력을 더욱 강력하게 만드는 수단이 됐다. 신형 ES가 흥미로운 이유는 새로운 무기를 얻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 무기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데 있다.
렉서스 ES의 가격은 ES350e 프리미엄 7,160만원, 럭셔리 8,020만원, VIP 8,390만원이다. ES500e는 프리미엄 7,700만원, 럭셔리 8,490만원이다. ES350h 프리미엄은 7,290만원, 럭셔리 7,780만원이며 AWD 프리미엄 7,590만원, AWD 럭셔리 8,080만원이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