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 '밸런스가 진짜 성능이다'..토요타 GR86

입력 2025년10월10일 08시30분 박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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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서와 수동변속기가 주는 '예측 가능한 균형'
 -손과 발끝으로 전해지는 운전의 즐거움 갖춰

 

 토요다 아키오 회장은 모리조라는 이름으로 직접 스티어링을 잡으며 “운전의 즐거움은 토요타가 끝까지 지켜야 할 가치”라고 강조해 왔다. GR86은 바로 그 철학이 가장 투명하게 구현된 차다. 첨단의 시대에도 여전히 아날로그적 손맛을 고집하는, 가주레이싱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후륜구동 스포츠카. 이 차는 단순히 이니셜 D 속 AE86의 후계자가 아니라 86이라는 이름이 남긴 문화적 상징을 오늘날 다시 불붙이는 점화장치다.

 


 

▲디자인&상품성
 전면에서 마주하는 인상은 명확하다. 낮게 가라앉은 차체 위로 벌어진 메쉬 그릴과 단단하게 조여 넣은 LED 헤드램프는 기능과 형태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단순히 멋을 위한 구멍이 아니라 범퍼의 에어덕트와 프런트 아울렛은 실제 주행 중 공기의 흐름을 다듬어 고속에서 앞머리를 단단히 붙들어 두는 장치다. AE86 시절부터 강조돼온 ‘날것의 기계’라는 캐릭터가 이제는 공력 최적화라는 무기로 한층 세련되게 진화했다.

 

 옆으로 시선을 옮기면 긴 보닛과 짧은 데크라는 전형적인 FR 비율이 날카롭게 드러난다. 벨트라인은 펜더 상단까지 수평으로 뻗어 단단한 어깨를 만들고 사이드 실 스포일러와 리어 휠 아치 핀은 허공을 가르듯 달려드는 차체의 긴장감을 실제 주행 안정성으로 연결한다. 기본 17인치, 프리미엄 18인치 알로이 휠은 단순한 휠타이어가 아니라 ‘서킷에 나설 수 있는 최소 단위’라는 메시지를 품고 있다.

 


 

 후면은 보는 순간 이 차가 ‘전륜 기반 쿠페’가 아니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각인시킨다. 리어 컴비네이션 램프는 입체적으로 설계돼 좌우를 매끄럽게 잇고 그 아래에서 조여든 휠 아치는 마치 레이싱 타이어를 억지로 우겨 넣은 듯한 타이트함을 준다. 작은 덕테일 스포일러와 모서리에 자리한 에어로 핀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고속 코너에서 리어를 한 치도 흔들리지 않게 고정시키는 기능적 장비다. 

 

 양쪽으로 뚫린 듀얼 배기 파이프는 시각적 허세와 거리가 멀다. 배기 효율을 챙기면서도 드라이버에게는 날카로운 금속성 배기음을, 외부에는 “엔트리 스포츠카도 이렇게 울부짖는다”는 강렬한 선언을 내뱉는다.

 

 실내는 더욱 직설적이다. 낮아진 힙 포지션과 중앙에 바짝 당겨진 시트 포지션은 몸을 차체 중심으로 끌어들이며 작은 직경의 스티어링 휠은 레이싱카 같은 반응성을 암시한다. 7인치 디지털 계기판은 트랙 모드 진입 시 RPM과 변속단수, 오일과 냉각수 온도까지 레이아웃을 바꿔버린다. 단순히 속도와 회전수만 표시하던 옛날 차와는 다르다. 서킷에 들어가면 운전자에게 필요한 모든 생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보고한다는 철학이 담겼다. 

 



 

 시트는 U자형 스프링 구조와 경량화 프레임으로 설계돼 하중을 받는 순간 허리를 단단히 고정한다. 가죽과 스웨이드라는 감촉의 고급스러움보다는 노면의 충격과 G를 직접적으로 받아내는 구조적 디테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편의 기능 역시 단순히 체면치레 수준이 아니다. 전 트림에 8인치 터치스크린과 애플 카플레이·안드로이드 오토를 갖추고 프리미엄에는 8스피커 오디오와 열선 시트를 얹었다. 물론 이 차를 고른 이들이라면 음악보다는 엔진과 배기음에 귀를 기울이겠지만 최소한 일상 주행에서 불편하지는 않도록 배려한 장치들이다. 듀얼존 오토 에어컨과 스마트키 역시 그렇다. 스포츠카는 불편해야 제맛이라는 낭만을 굳이 강요하지 않고 필요한 만큼의 일상성을 허락한다.

 


 

 ▲성능
 파워트레인은 이전보다 강력해졌다. 기존 2.0ℓ 4기통 박서 엔진은 2.4ℓ로 배기량을 키웠고 출력은 207마력에서 231마력으로 증대됐다. 배기량과 출력이 동시에 늘었지만 엔진의 무게는 오히려 줄었다. 엔진 자체의 무게를 경량화하기 위해 실린더 라이너를 깎아냈다는 것이 토요타 측의 설명. 성능과 경량화를 동시에 잡은 셈이다. 

 

 덕분에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에 도달하는 시간도 7.4초에서 6.3초로 단축됐으며, 7,400rpm까지 회전수를 끌어올릴 수 있는 고회전 성향 또한 여전히 이 차의 매력으로 남아 있다. 여기에 6단 수동 변속기는 클러치 용량과 기어 강도를 높이고 저점도 오일을 적용해 기어 체결감을 한층 선명하게 다듬었다.

 


 

 수치에서 벗어나 실제 주행에 나서면 GR86이 왜 ‘밸런스의 교과서’라 불리는지 체감할 수 있다. 와인딩로드에서 첫 코너로 진입하는 순간, 차체는 운전자가 의도한 만큼만 정확하게 반응한다. 박서 엔진의 낮은 무게 중심은 앞머리를 곧게 눌러주고 스티어링을 비트는 즉시 차체 전체가 따라붙는다. 

 

 노즈가 흐트러지거나 리어가 갑자기 풀리는 일은 없고 모든 움직임이 수학 공식처럼 예측 가능하다. 연속된 좌우 전환에서도 차체는 기울었다가도 곧바로 중심을 찾아내며 리듬을 만들어낸다.

 

 핸들링 감각은 날카롭지만 불안하지 않다. 전동식 파워스티어링이지만 노면의 질감과 타이어의 여유 그립이 손끝까지 전달되고 드라이버는 지금 이 차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를 쉽게 읽어낼 수 있다. 특히 빠른 코너에서 약간의 오버스티어가 찾아올 때도 그 전개가 매우 점진적이다. 덕분에 드라이버는 드리프트로 이어갈지 라인을 고쳐 잡을지 여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재가속 순간에는 수동 변속기의 손맛이 살아난다. 킥다운을 위해 클러치를 밟는 순간, 페달이 단단히 버티다가 일정 지점에서 ‘착’ 하고 맞물리는 미트감이 손에 전해진다. 노브는 손바닥에서 또각 하고 걸리고, 기어가 체결되는 순간 금속성의 질감이 손끝을 스친다. 자동변속기에선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기계와 기계가 직접 맞물리는 손맛이다.

 

 5,000rpm 부근에서 변속하라는 경고음을 무시하고 7,000rpm까지 밀어붙이면 카랑카랑한 자연흡기 사운드가 실내를 가득 메운다. 이 영역에서 터져 나오는 출력은 단순히 힘이 세졌다는 차원을 넘어 엔진과 드라이버가 호흡을 맞춘 결과물처럼 느껴진다. 직선 가속은 이전보다 눈에 띄게 빨라졌지만 진짜 재미는 코너와 코너 사이를 이어 달리는 그 과정에 있다.

 


 

 결국 GR86은 절대적인 수치가 아니라 균형으로 승부한다. 출력과 무게, 차체 강성이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절묘하게 맞물리며 드라이버에게는 언제나 믿을 수 있는 거동을 되돌려준다. 그래서 우리는 이 차를 두고 흔히 밸런스가 좋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말은 GR86을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정의이기도 하다.

 


 

 ▲총평
 슈퍼카가 좋다는 걸 누가 모르겠는가. 폭발적인 출력과 호화로운 마감은 누구라도 감탄할 만하다. 그러나 진짜 운전의 재미는 스펙시트에 적힌 숫자나 가죽의 질감이 아니라 스티어링을 꺾는 손끝과 클러치 페달에서 되돌아오는 감각에서 나온다. 

 

 그래서 GR86은 단순히 가성비 좋은 스포츠카가 아니다. 균형이 주는 짜릿함, 예측 가능한 거동에서 오는 신뢰, 그리고 드라이버가 직접 개입해야만 완성되는 손맛. 이 모든 요소가 합쳐져 '이런 게 진짜 차다'라는 확신을 준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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