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급 최고 수준의 상품성, 픽업트럭의 새로운 기준
국내 픽업트럭 시장은 오랫동안 KGM의 독무대였다. 이후 GM한국사업장이 쉐보레 콜로라도를 투입하며 경쟁 구도가 형성됐고 2024년까지 동급의 픽업 라인업은 무쏘 칸, 콜로라도, 레인저 그리고 지프 글래디에이터가 전부였다. 이 같은 조용한 시장에 활기를 불어 넣을 신차가 등장했다. 바로 기아의 첫 정통 픽업트럭 타스만이다. 브리사 픽업 이후 약 50년 만에 돌아온 기아표 픽업은 과연 어떤 완성도를 보여줄까. 타스만 X-프로를 시승하며 직접 확인해봤다.
▲디자인&상품성
타스만은 1973년 브리사 픽업 이후 약 반세기 만에 등장한 정통 픽업트럭이다. 물론 그간 1톤 상용 트럭 생산은 꾸준히 이어졌지만 3박스 구조를 갖춘 레저형 픽업의 등장은 사실상 처음이라 해도 무방하다. ‘기아가 픽업을 어떻게 해석할까’에 대한 궁금증은 출시 전 스파이샷이 공개되며 한층 커졌고, 실차 공개 이후에는 디자인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오갔다. 하지만 실제로 마주한 타스만은 기대와 우려를 잠재우며 강렬하고 멋있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타스만은 웅장함과 유연함을 동시에 품은 전면 디자인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강인한 선보다는 유려한 곡선 위주의 조형미가 중심을 이루며 전반적으로는 마치 순한 대형견 같은 친숙한 인상이다. 휀더 양 끝 단에 배치한 헤드램프는 차체를 더욱 넓어 보이게 만든다.
여기에 X-프로 트림의 경우 일반 대비 50㎜ 높은 차고를 바탕으로 더욱 당당한 자세를 갖췄다. 범퍼는 끝을 살짝 들어 올려 역동적인 이미지를 강조했고 붉은색 견인고리와 ‘ㄱ’자 형태의 날카로운 주간주행등, 수직 배열의 풀LED 헤드램프, 범퍼 내장형 안개등 등 세부 구성도 튼튼한 오프로더의 인상을 완성한다. 라디에이터 그릴은 작아 보이지만 범퍼 중앙과 하단부의 개방을 통해 공기 유입 효율을 높였다.
측면부는 기존 픽업트럭과는 차별화된 조형이 눈길을 끈다. 전후 휠하우스 상단에 넓은 크레들을 더해 존재감을 부각시킨 것. 전면에서 시작한 벨트라인은 후미까지 이어지는 전형적인 픽업트럭의 실루엣을 따른다.
C필러 뒤쪽 도어는 45도 방향으로 꺾이며 다소 파격적인 인상을 주지만 짐칸과의 조화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지붕에는 루프렉이 기본 적용돼 추가로 짐을 실을 수 있는 실용성을 확보했으며 265/70 R17 AT타이어는 오프로드 주행을 염두에 둔 사이즈다. 조수석 후륜 휠하우스 상단에는 사물함이 마련돼 간단한 공구 수납이 가능하다. 또 뒷범퍼 모서리는 발판 기능을 갖춰 짐칸으로의 접근성을 높였다.
후면부는 풀LED 테일램프를 중심으로 간결하면서도 강인한 인상을 준다. 트렁크에 새겨진 'KIA' 음각 엠블럼과 'TASMAN' 양각 엠블럼의 조화가 세련되며 하단부에는 최대 적재하중 및 4륜구동을 나타내는 4X 앰블럼이 부착됐다. 트레일러용 소켓과 긴 번호판 장착 공간, 상단의 3점식 LED 브레이크등 등 실용성과 시인성 모두를 만족시킨다.
실내는 동급 최고 수준의 상품성을 지녔다. 특히, 1열은 일반 SUV와 견줄 만큼 세련된 구성으로 기아의 최신 디자인 아이덴티티가 핸들과 대시보드를 통해 구현됐다. 스티어링 휠은 상하 D컷 형태로 스포티한 감각을 강조하며 우측 핸들 안쪽에 위치한 컬럼식 변속레버는 기아의 일관된 설계를 따랐다. 파노라믹 와이드 디스플레이는 클러스터와 인포테인먼트를 통합했다. 그 사이에는 공조 조작부가 위치한다. 다만 스티어링 휠 구조로 인해 시인성이 일부 가려지는 점은 아쉽다.
센터 콘솔에는 무선 충전패드와 유선 포트가 제공되고 충전 상태는 전방 LED로 표시된다. 운전석 도어트림은 도어 열림 레버의 미끄럼 방지 디테일과 함께 자주 사용하는 시트 통풍, 열선, 스티어링 열선, 시트 메모리 버튼을 한데 모아 편의성을 높였다. 전 좌석 세이프티 파워 윈도우 적용으로 안전성도 강화했다. 특히, 센터콘솔 덮개는 간이 테이블로 활용 가능해 실내에서의 활용성을 높인 부분은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2열 공간도 준수하다. 6:4 분할 슬라이딩 및 리클라이닝 시트는 장거리 주행 시 편안함을 보장하며 쿠션 팁업 시트와 하단 스토리지 등 픽업트럭의 실용성을 잘 살렸다. 하단 수납공간은 간단한 장비나 공구를 보관하기에 적합하다.
또 2열 에어벤트, 지퍼형 듀얼 포켓, USB C포트, B필러 손잡이, 컵홀더 등 편의 기능도 풍부하다. 트렁크 공간에는 다양한 브라켓과 홀더를 제공해 적재물에 따라 결박을 편하게 했다. 짐칸은 끝부분 양쪽에 작업등이 있고 운전석방향 작업등 아래에는 파워아웃렛을 넣었다. 짐칸 도어는 소프트하게 열리나 45도 각도로 고정하는 도어 케이블 홀더가 없는 것은 아쉽다.
12.3인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기아 커넥트, 무선 폰 프로젝션, 인카페이먼트를 지원한다. 하만카돈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이 더해져 8스피커와 외장 앰프를 통한 만족할만한 수준의 음질을 구현했다.
오프로드 페이지 기능과 고화질 그라운드 뷰 모니터는 험로 주행 시 차 상태를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 실용적이다. 무선 애플 카플레이 및 안드로이드 오토는 기본 탑재되며 기아커넥티비티 기능은 최초 가입 후 5년간 무료, 라이트 서비스(SOS긴급출동, 에어백전개자동 통보, 교통정보 제공)는 10년간 무상 제공돼 경쟁력을 더한다.
▲성능
타스만의 파워트레인은 2.5ℓ 가솔린 터보 단일 구성이며 8단 자동변속기와 맞물린다. 시승차는 전자식 4WD 시스템을 탑재한 X-프로 트림으로 오토·스노우·머드·샌드 등 네 가지 지형 모드를 지원하며 험로 저속 크루즈 컨트롤과 ROCK 모드, 전자식 차동기어 잠금장치(LD)도 갖췄다.
최고출력 281마력, 최대토크 43.0㎏·m를 발휘해 제원상 수치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공차중량과 적재물을 고려하면 다소 아쉬울 수 있지만 실주행에서는 힘의 부족을 느끼기 어렵다. 효율은 복합 기준 7.6㎞/ℓ(도심: 6.9, 고속: 8.5)이며 정체가 심한 시내 주행에서는 5㎞/ℓ 후반대를 기록했다.
시동을 걸면 가솔린 터보 엔진이 조용히 깨어난다. 냉간시동 시 냉각수 수온계가 빠르게 정상 온도로 올라가는 것이 인상적이다. 전자식 서모스탯의 적용으로 겨울철 히터 반응 속도에서 강점을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출발을 위해 변속기를 D에 두면 진동 없이 매끄럽게 움직이며 초기 진동 억제력도 좋다. 노면 충격 흡수 능력은 대체로 무난한 수준이나 작은 범프를 지난 후에는 상하 움직임의 잔상이 비교적 길게 남는다. 스프링과 댐퍼 간 세팅 조율이 더 정교해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고속화도로 주행에서는 8단 변속기가 속도에 맞춰 부드럽게 기어를 올리지만 급가속 시에는 변속 시점이 다소 늦는 감이 있다. 이로 인해 응답성이 느리게 느껴질 수 있는데 이는 차의 성격을 고려한 기아 연구진의 의도가 들어간 세팅으로 추측한다. 수동 변속 모드에서는 기어가 고정되지 않고 일정 rpm 이상에서 강제로 상단 기어로 넘어가며 편리함에 초점을 맞췄다.
이 외에도 정차 중에는 경사로나 장애물이 감지될 경우 기어 레버를 P로 변경하면 자동으로 전자식 파킹 브레이크가 작동된다. 또 전조등은 야간에 항상 켜지며, 스위치 설정과 관계없이 작동된다. 기아가 안전에 중점을 둔 세팅을 했다고 판단된다.
고속도로에서 빠져 나와 농로에 들어서자 4WD 오토 모드에서 각 바퀴로 전달되는 구동력이 클러스터를 통해 실시간 표시된다. 완전한 비포장 환경이 아니었던 만큼 2H(후륜) 모드로 전환해도 주행에는 무리가 없다.
다만 시동을 끄고 재시동 시 구동 모드가 초기화돼 4WD 오토 모드로 돌아가는 점은 조금 아쉽다. 험로에서는 사용자의 최종 설정값이 유지되도록 라스트 모드로 세팅하는 것이 더 직관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큰 불편은 아니며 전체적으로 차가 가진 오프로드 실력을 경험하면 매력과 즐거움이 훨씬 많이 다가온다.
▲총평
기아가 타스만을 통해 픽업트럭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과거 브리사 픽업 이후 50년 만의 도전이며 이번에는 단순한 화물용이 아닌 본격 다목적 차로 승부수를 던졌다. 해외 라이벌과 비교해도 경쟁력이 있고 특히, 국내 시장에서는 SUV 및 레저 수요가 맞물리며 주목 받을 가능성이 크다. 디자인은 호불호가 있을 수 있지만 전반적인 상품성은 매우 높다.
정숙성, 실내 구성, 주행 성능, 편의 기능까지 전반적으로 잘 갖춰졌다. 무쏘 칸, 콜로라도, 레인저, 글래디에이터 등 경쟁차 사이에서도 타스만은 확실한 존재감을 갖는다. 픽업트럭을 일상용으로 고려하는 소비자라면 충분히 눈 여겨 볼만하다. 기아는 타스만을 통해 국내 픽업 시장의 상품성 기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고 첫 시도에서 이 정도 완성도면 다음 상품성 개선제품과 부분변경 등에 대한 기대도 클 수 있다.
한편, 시승차는 타스만 X-프로의 가격은 5,595만원이다.
박재용(공학박사, 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