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한 데이터로 완성도 높은 주행 성능 구현
-진단과 처방, 가이드 수립까지 폭 넓게 전개
-시행착오 줄이고 시간과 비용 아낄 수 있어
자동차의 주행 감각은 단순히 수치로만 평가할 수 없는 영역이다. 노면의 충격을 얼마나 부드럽게 걸러내는지, 선회 시 차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따라 운전자는 안정감과 동시에 주행의 즐거움을 느낀다. 특히, R&H(Ride & Handling) 성능은 파워트레인의 종류와 관계없이 모든 차종에 공통으로 요구되는 기본 역량이다. 내연기관차, 전기차, 수소전기차를 막론하고 R&H 성능은 차 완성도의 핵심 지표로 평가받는다.
전기차 시대로 진입하면서 R&H 성능은 차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중요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전기차는 과거 슈퍼카 급에서나 구현 가능했던 가속력을 낼 수 있어 고속 영역에서의 주행 안정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뿐 아니라, 차 하중 증대로 서스펜션과 타이어에 가해지는 부담은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 대비 훨씬 커졌기 때문이다.
남양기술연구소의 R&H성능개발동은 차의 주행 성능과 안정성을 검증하고 개발하기 위해 세계 최고 수준의 정밀 시험 시설로 구성돼 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 23일 직접 성능개발동을 찾았다. 지면에 닿는 타이어부터 서스펜션 모듈과 실차 평가에 이르기까지 현대차·기아의 R&H 연구개발 과정을 자세히 살펴봤다.
시작에 앞서 R&H성능개발동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이어졌다. 오로지 시험 장비만을 위해 지어졌으며 서스펜션과 타이어 핸들링 등 차의 주행 완성도를 높이는 부분을 전부 테스트 한다. 쉽게 말하면 종합건강검진과 같은 곳이다. 평가 차를 선정하고 리그 시험기를 이용한 성능과 현장 평가, 그리고 잠재성능과 취약점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이후 성능 최적화를 위한 대응 방안을 제시하고 개발 이력 데이터 베이스 구축 및 개발 가이드를 수립한다. 과거에는 타보고 알았다면 현재는 시스템이 어느정도 초기에 육성돼 있기 때문에 시행착오 및 시간과 비용을 최소화 할 수 있다는 게 연구원 설명이다. 실제 도로에서 안하고 시험장에서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일관성이다. 날씨나 환경, 사람,별 차이를두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두 번째는 공간과 시간의 한계를 벗어날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개별 시스템 부품 영향도 분석 가능하다.
차의 주행 성능을 결정하는 R&H 개발은 모든 주행 성능의 근간이 되는 타이어 개발로부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살펴본 것은 고속 타이어 유니포미티 시험기였다. 시험실 안에서는 커다란 드럼 위에 고정된 타이어가 빠른 속도로 회전하고 있었다. 주행성능기술팀 최고봉 책임연구원은 “타이어는 고속으로 회전하면서 미세한 불균형으로 진동이 발생한다. 해당 시험기는 타이어 진동 유발 정도를 정확히 측정하는 게 주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시험기는 최고시속 320km까지 회전하는 드럼 위에서 타이어를 굴려 진동 발생 여부를 측정한다. 또 드럼 위에 작은 클릿(Cleat)을 부착해 타이어가 요철을 통과할 때 움직임을 파악하고 승차감 특성까지 평가할 수 있다.
다음으로 살펴본 시설은 타이어 특성 시험기였다. 이 시설은 타이어의 강성과 접지 특성을 분석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앞서 살펴본 시험기와 다른 점은 실제 도로와 유사한 평평한 벨트 위에서 타이어를 굴린다는 점이다. 회전하는 타이어의 조향각이나 캠버각을 변화시켜 타이어가 만들어내는 힘과 반응 속도를 정밀하게 측정한다.
시험 과정에서 얻은 데이터는 차 시뮬레이션용 가상 모델을 만드는 데 활용한다. 박성호 주행성능기술팀 책임연구원은 “자동차의 주행 성능은 타이어가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차에 가장 적합한 타이어를 선정하기 위해 타이어 특성 시험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다음으로 차의 핸들링 특성을 연구개발하는 핸들링 주행시험기를 살펴봤다. 거대한 기계 장치 위에는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이 단단히 고정돼 있었다. 그리고 차 앞에는 120인치 디스플레이를 통해 가상의 주행 환경이 그대로 표시됐다. 차 안에는 운전자 대신 주행 로봇이 설치돼 있는 상태. 이 로봇은 스티어링 휠이나 페달 조작은 물론 수동 변속기도 정밀하게 조작할 수 있다고 한다.
시험이 시작되자 코나 일렉트릭은 제자리에서 바퀴를 굴리기 시작했고 마치 실제 도로 위를 달리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이어서 주행 시뮬레이션에 따라 차의 선회 상황을 재현했다. 이는 차체와 지면간의 미끄러짐 각도(Slip angle)를 구현해 핸들링 성능을 측정하는 것이다. 김성훈 주행성능기술팀 연구원은 “실제 프루빙 그라운드에서 주행하지 않아도 이 시험기를 통해 다양한 노면 조건과 한계 상황을 반복적으로 시험할 수 있다. 특히, 스티어링 응답이나 차의 거동을 정밀하게 측정하고 분석하는 데 큰 강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지는 시설은 승차감 주행시험기였다. 승차감 주행시험기는 다양한 노면 조건에서 차 반응을 정밀하게 평가하기 위해 개발한 장비다. 플랫 벨트와 유압 액추에이터로 구성된 시험기는 실제 도로의 노면 변화를 그대로 재현해 타이어 접지면에 전달한다. 플랫 벨트 위에는 차가 아닌, 아이오닉 5의 후륜 차축 모듈(리어 서스펜션과 타이어로 구성)만 올라가 있었다. 곧이어 플랫 벨트가 회전하면서 위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위에 올라간 타이어와 서스펜션은 시험기의 움직임에 따라 빠르게 반응했다.
초당 최대 40회까지 입력이 가능한 승차감 주행시험기는 부드러운 아스팔트부터 요철이 많은 도로까지 여러 주행 환경을 시험할 수 있다. 또 차 뿐만 아니라 모듈 단위로 시험이 가능해 보다 정밀하게 목표한 승차감을 구현할 수 있다. 정종민 주행성능기술팀 책임연구원은 “실제 도로에서 테스트하면 날씨나 운전자 성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지만 이 시설은 그런 변수를 통제한 상태에서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승차감 주행시험기의 또 다른 특징은 세계 각 지역의 노면 환경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북미, 유럽, 중국 등 각 시장의 대표적인 노면 데이터를 시험기에 적용해 현지와 동일한 조건에서 승차감을 평가할 수 있다. 남양기술연구소에서 축적되는 이 데이터는 단순히 승차감을 개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글로벌 시장의 요구에 맞는 주행 품질을 확보하는 데 핵심 자료로 활용된다.
더 나은 R&H 성능을 향한 남양기술연구소의 개발 과정을 직접 살펴보며 현대차·기아가 전동화 시대에서도 높은 신뢰도와 상품성을 유지하는 비결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첨단 시험 설비와 방대한 데이터에서 비롯된 차 개발 노하우는 현대차·기아가 글로벌 시장에서 신뢰받는 이유를 다시금 증명하고 있다.
김성환 기자 swkim@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