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기술, 품질’이 전부는 아냐
-브랜드 좋아도 결국 시장 있어야
한때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화두는 ‘브랜드, 기술, 품질’ 등으로 집약됐다.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았을 때 최종적으로 구매하는 주인공이 소비자라는 점에서 제품력 향상에 집중한 결과다. 이때 해당 제품이 어디서 생산되느냐는 기업의 관심일 뿐 구매자는 크게 비중을 두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기업은 최소 비용이 들어가는 국가에 공장을 짓고 제품생산 후 잘 팔리는 나라로 보내는 데 익숙(?)하다. 그래야 수익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잘 팔리는 나라’다. 기본적으로 자동차가 ‘잘 팔리는 나라’의 공통점은 인구 대국이다. 미국, 중국, 인도, 러시아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니 모든 자동차회사들이 인구 대국에서 자동차를 팔기 위해 앞다퉈 진출했다. 때로는 너무 많이 팔리거나 완성차 수출 관세 장벽이 높아 현지에 공장을 짓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기업 덩치를 키우려면 인구 대국 시장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질서를 통째로 뒤집겠다는 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생각이다. 생산 비용이 낮은 나라에서 만든 자동차는 인구대국에 들어오지 말라는 게 관세 정책이다. 미국에서 자동차 판매하려면 미국에서 부품 조달하고, 미국에서 완성차를 조립하며, 미국에서 판매하라는 것이다. 심지어 미국에서 완성된 자동차는 수출하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마저 고수한다. 오로지 ‘미국 생산-미국 판매’에 집중하자며 관세를 대폭 올렸다. 흔히 말하는 자국 보호주의다.
이때 타격을 입는 곳은 당연히 미국 이외 지역에서 생산된 완성차와 부품을 미국에 많이 수출하는 국가다. 미국 시각으로는 멕시코, 한국, 일본 등이다. 그러나 타격이 주는 강도는 각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 멕시코가 미국에 수출하는 자동차는 미국 기업의 비중이 높다. 따라서 멕시코산에 관세를 높이면 미국 기업의 손해로 직결되고 이들이 미국에 내는 세금이 줄어든다. 반면 한국과 일본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자동차는 한국과 일본 기업의 제품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한국은 연간 40만대 가량이 미국 기업을 위해 수출되지만 트럼프 시각에서 관심을 줄 만큼의 물량은 아니다. 그러니 한국과 일본에 고율의 자동차 관세를 매겼고 두 나라 모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물론 유럽에서 자동차를 만들어 미국에 수출하는 나라와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따라서 연간 1,800만대의 미국 자동차 시장을 두고 국가 간 생산 경쟁, 그리고 기업 간 치밀한 눈치(?) 작전이 작동되기 시작했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꺼내든 고율의 관세 정책이 후퇴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된 한국산 자동차를 기준할 때 현대차는 57만4,000대, 기아는 35만7,000대, 한국지엠은 41만대를 미국에 수출했다(각사 판매 자료 기준). 국내에서 생산된 413만대의 32.5%인 134만대가 25%의 관세를 부과받게 된다. 관세는 통관 기준이어서 국내 생산분이 미국 세관에 통관 신고를 할 때 25%가 부과되고 해당 비용은 고스란히 미국 내 MSRP(Manufacturer's Suggested Retail Price, 권장 소비자 가격)에 반영된다. 2,000만원에 통관하면 판매 제품의 원가가 2,500만원이 되고 여기에 수입사 및 판매사 마진이 더해져 소비자에게 인도된다. 당연히 미국 소비자도 오른 가격을 감내해야 한다.
이때 벌어지는 제조사 간 눈치(?) 작전은 차종별 가격에서 나타난다.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경쟁사의 상황이다. 경쟁사들이 내놓는 경쟁 차종이 예외 없이 해외 생산이라면 관세를 적용받더라도 경쟁 환경에는 변화가 없어 안심(?) 할 수 있다. 그러나 경쟁 차종의 생산지가 미국이어서 가격 변동이 없으면 해외 생산제품을 도입하는 기업은 경쟁 자체가 되지 않는다. 이때 전략적 판단은 관세의 가격 반영 여부다. 한국과 일본 기업들은 소형일 경우 관세가 25% 붙어도 미국 내 판매 가격에는 당분간 변동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관세 부담을 기업이 흡수하겠다는 것이고 이익보다 공장 가동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얘기와 같다. 공장을 놀리는 것보다 이익이 없어도 미국으로 내보내는 게 전략적으로 낫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익 없는 행위를 지속할 수는 없다. 그래서 미국 내 주요 인기 차종은 미국 생산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현대차그룹은 국내 생산-미국 수출 92만대 가운데 60만대를 미국에서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줄어드는 한국 생산 60만대를 어떻게 보전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만들어도 팔 곳이 없으면 국내에서 생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때 눈을 돌린 곳이 기타 시장이다. 2023년 기준 유럽에서 판매된 한국산 완성차는 60만대에 달한다. 이외 아프리카 4만1,000대, 아시아 4만2,500여대다. 중동이 21만9,000대, 오세아니아는 18만7,000대 규모다. 중남미는 12만4,000대 정도 수출됐다. 결국 미국으로 건너갈 60만대를 이들 지역에 분산 판매하는 전략이 우선 해법으로 등장하기 마련이고 여기서 주목하는 지역은 완성차 판매대수가 빠르게 증가하는 동남아시아와 중남미 등의 거대 인구 밀집 시장이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동남아시아 자동차 시장은 지난 2022년 347만대에서 2030년 584만대로 성장한다. 인구 7억에 소비 인구 연령이 젋다는 사실은 한국차의 수출 다변화를 충분히 이끌어 낼 수 있다. 동시에 인구 4억명의 남미 시장도 미국 수출의 대안으로 삼을 수 있다.
그런데 해당 지역에서 주요 경쟁력 항목은 ‘가격’이다. 미국 대비 상대적으로 1인당 소득이 적은 탓에 저가 차종의 선호도가 높아서다. 결국 경쟁에 합류해 한국산 생산을 유지하려면 생산 단계에서 원가 절감이 절실하다는 의미다. 기술 개발로 비용을 줄이고 인건비 증가를 억제해야 한다. 비용 대비 시간당 생산성도 높여야 한다.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이루어졌던 불필요한 비용지출도 모두 줄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위적으로 완성차 공장 가동을 줄이거나 멈춰 생산 대수를 조절할 수밖에 없다.
실제 올해의 경우 대체 시장 공략이 당장 시행돼도 미국의 고율 관세 부담을 피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올해 완성차 국내 생산은 그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감축되기 마련이다. 이 경우 연쇄적으로 부품사 공급이 줄고 일자리도 지켜내기 어렵다. 새로운 정부가 구성돼 미국과 협상을 다시 해도 과거와 같은 무관세 수준으로 되돌리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기존에 쌓아 둔 유보 이익금을 활용해 기업별로 일정 기간 버틸 수 있지만 이 또한 생산을 줄인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고율 관세로 국내 자동차 생산의 구조조정은 필연적이다. 생산 감축을 당장 해결할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체 시장 확장도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대책은 충격파 완화에 집중해야 한다. 지진이 발생했고(고율 관세 부과) 그에 따른 쓰나미(국내 생산 감축)는 어느 정도 예측된다. 지금은 어떻게 피해를 최소화할 것인가에 모든 논의가 집중돼야 한다. 대체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필요한 정부의 지원책이 무엇인지 살펴야 하며, 자칫 무너질 수 있는 공급망도 최대한 지켜내야 한다. 국내 공장 1~2곳이 문을 닫는 최악의 상황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누가 대통령이 돼도 미국발 ‘먹고 사는 문제’의 충격파를 막기에는 이미 늦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오로지 정권 획득을 위해 정쟁에 매몰될 때 미국은 고율 관세를 던졌고 한국은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국내 문제보다 관세의 심각성이 훨씬 컸음에도 국내 상황에 매몰돼 관심을 두지 않았던 점도 아쉽다. 결국 자동차 산업을 과거로 되돌리려는 미국 트럼프 정부의 전략에 한국은 현재 이익의 일부를 돌려줘야 한다. 따라서 대책은 이런 사실을 모두 직시하고 인정할 때 최선의 해결책이 도출된다. 미국을 원망(?)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니 말이다.
권용주 편집위원